호주 산불이 다섯 달째 이어지면서 서울 면적의 약 100배인 600만㏊(핵타르)가 잿더미로 변했다. 이상기후로 비가 좀처럼 내리지 않고 기온은 사상 최고로 치솟으면서 현지 소방당국은 진화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 코알라, 캥거루 등 호주에 서식하는 동물들이 멸종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경제적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일(현지시간) ABC방송 등 호주 언론에 따르면 퀸즐랜드주와 뉴사우스웨일스주(NSW)에서 지난해 9월 첫 째주 100여건의 화재가 발생한 뒤로 5개월째 산불이 이어져 최소 600만㏊가 불탄 것으로 추정된다. 호주 매체인 나인 뉴스는 호주 전역에서 590만㏊, 세븐 뉴스는 600만㏊를 태웠다고 각각 보도했다.
산불이 꺼지지 않는 자연적 이유로는 폭염, 가뭄, 돌풍이 꼽힌다. 본래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대륙 중 하나로 연평균 강우량이 600㎜ 미만이다. 남반구에 있는 호주에서는 9∼11월이 봄, 12월∼2월이 여름이다. 작년 9월 초봄부터 기온이 30도가 넘는 등 이상고온 현상을 보였다. 작년 12월부터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기온은 더 올랐고, 최근 시드니는 서부 교외인 펜리스에서 사상 최고인 섭씨 48.1도를 기록했다. 여기에 시속 35∼45㎞의 돌풍까지 부는 등 악재들이 겹치면서 산불이 급속도로 퍼졌다.
호주 환경운동가들은 지구 온난화도 산불을 부추겼다며 정부에 석탄 채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석탄 산업을 옹호하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일자리 축소 등 경기 후퇴를 우려하며 이러한 요구를 일축했다. 호주는 전 세계 석탄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모리슨 총리는 지난 연말 하와이로 휴가를 다녀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불 피해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산불로 캥거루와 코알라 등 야생동물 5억 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생태학자들은 화마를 피하지 못한 일부 동물이 이미 멸종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호주에서 세번째로 큰 섬으로 ‘야생동물의 보고’로 불리는 캥거루섬도 호주 남동부를 휩쓴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이 섬에는 약 5만 마리 코알라들이 있었지만 산불이 섬 전체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7만ha를 휩쓸면서 서식하는 코알라의 절반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캥거루섬 야생공원’을 운영하는 샘 미첼은 “코알라 개체 수의 50% 이상이 사라졌다”면서 “나머지도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 몇주 내로 집단 아사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호주코알라재단은 산불의 본격적인 확산 초기였던 지난해 11월 이미 호주 전역에서 1,000마리가 넘는 코알라가 희생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코알라 뿐만 아니라 호주 토착종인 유대류 동물 ‘두나트’와 ‘주머니여우’, ‘긴발쥐캥거루’, ‘은색머리안테키누스’ 등도 서식지를 잃고 있다. 호주의 생물다양성 전문가인 크리스 딕맨 시드니대 생태학 교수에 따르면 현재까지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만 약 4억 8,000만 마리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가 산불로 목숨을 잃거나 피해 영향권에 들었다. 산불의 확산 추세로 볼 때 더 많은 동물이 산불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산불은 인명 및 재산 피해로 이어졌다. 지난 7일 기준 산불 지역 주민 10만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고 사망자는 최소 24명, 실종자도 20명이 넘는다. 주택 수천 채가 불에 탔다. 호주 보험 당국은 자국을 덮친 산불로 인한 피해 청구액이 이달 7일까지 7억 호주 달러(5,59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호주 보험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이후 산불이 계속됨에 따라 주택 파괴를 포함한 피해 청구 건수가 거의 9,000건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호주 당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연 인원 25만명 이상을 투입하고 소방차량 700대와 항공기 100대 이상을 동원하고 있지만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세인 피츠시몬스 NSW주 산불방재청장은 공영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새해 들어 산불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타고 있다”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산불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보호하는 데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불이 속수무책으로 번지자 각국에서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톱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호주 산불 구호 활동을 돕기 위해 자신이 후원하는 환경재단 ‘어스 얼라이언스’를 통해 300만 달러(34억8,000만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재단은 “재앙적인 호주 산불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을 돕기 위해 ‘호주 산불 펀드’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어스 얼라이언스가 만든 산불 펀드는 호주 지역의 단체들과 협력해 구호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호주 국적의 헐리우드 여배우 니콜 키드먼과 배우자인 가수 키스 어번은 50만 달러를 기부했다. 영화 ‘토르’와 ‘어벤져스’ 시리즈에 출연한 호주 출신의 스타 크리스 헴스워스는 100만 호주달러를 내놓았다. 영국 팝스타 엘튼 존 역시 시드니에서 가졌던 콘서트에서 같은 금액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는 자신들의 자선재단 ‘올 위드 마이 핸즈’와 함께 75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고, 미국 팝스타 핑크도 50만 달러를 내놓으며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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