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맛있는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 빠르게 실패한 경험, 누구나 있으시죠. 이번엔 반드시 살을 빼겠다고 이를 악물었지만 어느새 접시가 깨끗해졌던 상황. 운동도 해보고 보조제까지 먹어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많던 눈앞의 음식이 모조리 사라져있던 경험. 대체 왜! 우리는 음식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고 마는 걸까요.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 첫째, 굶주림을 거부하는 우리의 본능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입니다. 250만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는 굶주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연구 등에 따르면 70억 인구 모두가 매일 2,800 칼로리 이상을 섭취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은 식량을 생산하게 된 건 불과 50년 정도밖에 안됐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늘 배고픔과 싸워야 했고, 굶어 죽은 사람들도 넘쳐 났죠. 그 고통의 기억들은 우리 뼛속 깊이, 유전자 깊숙한 곳까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우리 몸은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닥치는 대로 많이 먹도록 프로그램 돼 있죠. 다이어트란 바로 이 같은 인류의 생존 본능을 거슬러야 성공할 수 있는 전쟁입니다. 웬만한 의지력으로는 결코 이겨낼 수 없죠.
게다가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 평소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특성(항상성·Homestasis)이 있습니다. 체중도 마찬가지인데, 즉 내 몸은 내 몸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기억하고 있기에 조금씩 변화가 있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이런 걸 세트포인트(체중조절점) 이론이라고 하는데, 다시 말해 하루 이틀 덜 먹어서 몸무게를 조금 줄여봤자 곧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여기다 굶주림을 두려워하는 인류의 본능은 우리 몸을 체중이 느는 것보다 빠지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시켰다고 하죠. 그래서 세트포인트보다 체중이 줄면 우리 몸은 즉각 ‘기아 대응(famine response)’ 태세에 돌입해서, 식욕을 촉진시키는 호르몬(그렐린)을 마구마구 내보내게 됩니다. 이 호르몬이 나오면 식욕이 급 당기는 것은 물론 음식 섭취 전까지 절대 해소되지 않는 두통까지 일으킨다네요.
이렇게 호르몬에 져서 과식을 할 경우 ‘요요현상(체중이 이전보다 더 늘어나는 현상)’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번 기아와 생존 위험을 느낀 육체는 혹시 모를 미래의 기아 상태를 대비해 지방 함량을 더 늘려버리거든요. 세트포인트가 높아지는 거죠. 세트포인트를 안정적으로 낮추는 데는 대략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강인한’ 의지력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하지만 강한 의지력이란 의지를 가지자고 마음먹는 것만으로 가질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무한대가 아니거든요. 의지력도 쓰면 닳습니다. 그리거 이 의지력이 다 소진돼 버리면 자제력을 잃고 폭주하는 ‘자아고갈’ 상태에 빠져 다시 과식을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죠.
‘강인한’ 의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지력이 바닥을 보이기 전에 보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이 있는데요. 우선 ‘간헐적 단식’. 간헐적 단식은 16시간 굶고 8시간 식사하는 방식으로 많이 하는데 16시간 단식을 하며 의지력이 떨어지려고 하는 그 순간 식사를 하면서 의지력을 보충해주는 전략입니다. 또 치팅데이 전략이 있습니다. 치팅데이란 다이어트를 하는 일주일 중 하루 정도는 평소처럼 식사하는 날을 말하는 건데요. 계속 절식을 하다가도 하루를 건강하게 평소처럼 먹으면 뇌는 기아 상태가 끝났다고 느끼고 비상 알람을 끄고 호르몬 등을 정상 상태로 유지하게 됩니다. 치팅데이를 통해 맛있는 걸 한껏 먹으며 의지력을 회복하는 계기도 되죠.
다이어트에 앞서 또 극복해야 하는 것이 ‘가짜 허기(fake hunger)’입니다. 식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실제 육체적으로 에너지(열량)가 부족해 발생하는 ‘항상성 허기’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결핍 탓에 나타나는 ‘정서적 허기’입니다. 정서적 허기는 육체적으로 에너지가 충분한데도 음식을 먹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게 해서 과식과 비만을 일으키죠.
이 가짜 허기는 혈당 저하나 스트레스가 심하면 나타난다고 하는데 외로움도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 우리 몸은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분출하는데요. 그래서 옥시토신은 ‘사랑 호르몬’ 또는 ‘관계 호르몬’ 등으로도 불리는데요, 이 호르몬이 나오면 불안이 사라지고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고 하죠. 하지만 옥시토신은 음식을 먹을 때도 나온다고 합니다. 소화기관의 내벽은 피부와 같은 기능이 있어서 음식이 들어가면 내벽을 마사지하는 효과가 나는데 이게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하게 스킨십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진짜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외로움에서 비롯된 가짜 허기는 음식 섭취로 달랠 수 없습니다. 실제 가짜 배고픔에 속은 경우는 배가 불러도 음식 먹는 걸 멈출 수가 없고 먹고 나서도 괜히 먹었다는 불쾌감이 남는다고 합니다. 체중은 늘고 음식은 끊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고 마는 거죠.
가짜 배고픔에 속는 것처럼 우리 몸은 시각적 자극이나 주변 환경에 속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과식을 일으킬 수 있는 주변의 ‘유혹자’들을 잘 피해가야만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는 거죠. 예컨대 과식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 저도 모르게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걸 카멜레온 효과(다른 사람의 말투와 신체적 표현을 모방하는 자연스러운 경향)라고 하죠. 또 밥공기에 밥을 절반만 담아 먹으며 음식 섭취량을 줄이겠다는 방식은 쉽게 성공하기 어렵다고 하네요. 평소 밥 한 공기를 먹었던 우리 뇌는 반 공기밖에 못 먹었다는 상실감을 잘 극복해내지 못하거든요. 차라리 밥그릇 크기 자체를 줄여버린다면 ‘밥 한 공기’를 먹었다는 만족감이 들어, 실제로는 식사량이 좀 줄어도 배고픔을 극복하기가 쉽다고 합니다. 또 비슷하게 음식은 가급적 대용량 제품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실제 2007년 브라이언 완싱크의 연구에 따르명 큰 통의 아이스크림을 받은 사람은 작은 통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에 비해 31% 더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아울러 ‘유기농’, ‘통곡물’, ‘저지방’ 같은 단어에 홀려 평소보다 많이 먹는 잘못을 범하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유기농은 왠지 덜 살 찔 것 같다고 믿는 걸 심리학적 용어로 ‘녹색 후광 효과(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관계 없는 다른 특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의 심리학 용어)’라고 한다는데, 당연히 유기농도 많이 먹으면 똑같이 살찝니다.
끝으로 다시 호르몬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포만감을 느끼는 호르몬인 렙틴 수치를 높일 수 있다면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렙틴은 체내 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데 근육이 많으면 렙틴 수치가 늘어난다고 하죠. 즉, 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릴 수 있다면 체중 조절에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수면 부족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잠이 모자라면 식욕 촉진 호르몬인 그렐린은 똑같이 분비되는데 렙틴 분비만 줄어들거든요. 잠이 부족하면 뭔가 먹고 싶은 충동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는 의미죠. 또 렙틴은 식사를 시작한 후 20분이 지난 후에야 나오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먹는 게 좋다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술은 딱 한 잔만 마셔도 렙틴 분비를 줄인다고 하니 체중 조절할 땐 가급적 술은 끊는 편이 좋겠습니다. 자 그럼 다시 힘내서 다이어트 해볼까요.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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