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25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의회에 나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도달하기를 원한다”고 깜짝선언을 한다. 냉전시대 소련을 이기기 위해 과도한 예산을 쓰느라 비판도 무성했지만, 미국은 첨단산업의 종합예술인 우주 분야의 문샷(moonshot)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기술 최강국의 위상을 확고히 구축할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실상 과학기술 패권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부터 ‘포용’ ’공정’과 함께 ‘혁신성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것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부합된다. 하지만 혁신성장의 필수조건이자 국가의 생존전략인 연구개발(R&D) 혁신 측면에서 보면 과연 파괴적 혁신을 이끌 ‘문샷형 R&D’라든지 ‘논문·특허 위주 연구’에서 벗어나 사업화를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의지와 실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우일 차기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정부가 수많은 R&D 혁신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논문·특허는 양산되지만 정작 사업화 비율은 20%가량에 그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R&D 기획·집행의 사령탑인 정부 부처와 기관은 높은 장벽을 허물려고 하지 않는다. 밥그릇이 걸렸기 때문이다. 연간 6만개가 넘는 R&D 과제의 효율적인 기획을 위한 전문성도 부족하고, 기획자와 수행자 간 유착 문제나 논문·특허 등 정량평가에 편중된 평가방식의 한계도 여전하다. 연구자들은 과다한 서류작업이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로막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연구현장도 마찬가지다. 교수나 연구원 중 노벨상을 많이 타는 미국·일본처럼 뚝심 있게 자기 연구를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선진국 연구를 벤치마킹하거나 연구비를 쉽게 타려고 유행에 휩쓸린다. 25개 과학기술 출연연은 관료화돼 기관 간 협력이 미흡하고 연구과제중심제도(PBS)로 인해 외부 과제 따는 데 힘을 쏟느라 기초·원천 연구에 소홀하다. 대학 역시 기초연구와 산학 협력 부족, 창업가 정신 부재라는 고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소기업은 인건비 따기 개념으로 접근하거나 R&D 브로커가 활개치며 좀비 기업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물론 정부가 연구자 스스로 제안하는 기초연구 과제를 올해 2조300억으로 3년 전 정권 출범 당시보다 61%나 늘리고 올해 정부 R&D 예산도 지난해보다 18%나 늘어난 24조2,000억원으로 잡은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나 질적인 도약이 수반돼야 한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산업혁명의 대전환기에서 과학기술과 우수 인재 양성 없이 강국으로 올라선 예가 없다”며 “재정지원 못지않게 과학기술 현장의 사기를 진작하고 기업가정신을 살려내 창의성을 높이며 세계 최고에 도전하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0’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시내 드론이나 도시첨단산업단지의 규제를 들며 “대한민국은 규제공화국이다. 혁명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규제 혁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무력화된 것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인공지능(AI)의 인프라 격인 데이터 3법을 1년 넘게 늑장통과시킨 정치권의 리더십 상실은 오는 4·15 총선에서 심판받아야 할 대목이다.
이제는 600여년 전 세계 1위의 과학기술 문명국가를 건설했던 세종대왕의 혁신(革新) DNA를 일깨울 때다. ‘피부를 벗겨 새롭게 할 정도의 고통을 감수한다’는 뜻이 내포된 ‘혁(革)’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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