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적용으로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는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비정규직법 도입 이후 공백 상태에 놓인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사업장 내 입지를 처음 판단한 것이어서 공기업과 사기업 전반에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달 24일 대전MBC 무기계약직 근로자 7명이 정규직과 동일한 취업규칙을 적용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재판을 다시 하라며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 앞서 1심은 대전MBC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이 받는 임금과 상여금을 80% 수준에 불과하고 근속수당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은 비정규직법에 명시된 근로자의 권한을 침해한다”며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무기계약직은 처우도 동일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무기계약직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처우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 무기계약직을 도입 중인 국내 사업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전체 근로자 중 무기계약직 비중은 공공 부문이 22만명 수준이고 민간 부문은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법원 판결로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이 줄소송에 나서면 그만큼 사업장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도현 노무법인 리담 대표노무사는 “기간제 근로자로 입사한 뒤 2년이 지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의 지위를 기존 정규직과 동일하게 봐야 한다고 법원이 사실상 처음 판단한 것”이라며 “그간 무기계약직은 정규직보다 임금이 적어도 정년 보장 같은 고용이 보장됐는데 임금과 상여·수당 등 모든 경제적 지위도 동일하게 적용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법원의 친노동자 판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증가세다. 2018년 9월 주말 연휴에 쉬고 월요일에 출근한 콜센터 상담원이 고객과의 상담전화 도중 쓰러진 사건에 대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올 2월에는 근로자의 육체노동 연한 기준을 60세에서 65세로 30년 만에 변경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지난해 말에는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기존 계약이 근로자에게 유리하다면 이를 우선해야 한다는 판결까지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현 정부의 친노동자 판결이 느는 배경을 놓고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대거 재판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대법원 재판부는 2018년 8월 김선수·이동원·노정희 신임 대법관을 시작으로 전체 대법관 14명 중 8명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으로 채워졌다. 법원 내 진보단체로 꼽히는 우리법연구회 창립멤버인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다수 대법관이 진보 성향의 법관으로 분류되는 탓에 기존 판례와 다른 전향적인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기덕 법무법인 새날 대표변호사는 “앞서 비정규직법이 입법화될 때 무기계약직의 처우와 위상에 대한 세부 법률이 없어 노동계에서는 법률 공백이라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왔다”며 “사법부가 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비정규직법의 입법 취지와 적용 범위를 처음으로 판단하면서 정규직 위주의 노동시장 구조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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