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프로야구 관중 수는 728만 명. 2016년 834만 명, 2017년 840만 명과 비교하면 100만 명 이상 줄었다. 언론들은 야구의 인기가 앞으로 하향 곡선을 그릴 수 있다는 전망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야생야사’를 외치는 야구 덕후(야덕)들이다. 20년 차 한 야덕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높은 인기를 이어온 야구가 2000년대 초중반 축구에 잠시 밀렸다가 인기를 회복했듯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스타 손흥민(28·토트넘 핫스퍼)의 하늘을 찌르는 인기에도 끄덕하지 않는 그들. 이들의 야구 사랑은 대를 잇고, 국내에서 해외로 뻗쳐나가며 아예 야구 관련 직업을 꿰차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이처럼 야구에 깊이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달 모여 야구에 대한 사랑을 나누고 선수들의 경기력을 분석하고 있다는 야덕들의 모임 ‘야구공작소’ 회원들을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모두 야구를 좋아하지만 덕후가 된 계기는 천차만별” |
야덕들이 느끼는 야구의 매력은 천차만별이다. ‘야구공작소’ 회원 박지훈(31) 씨는 “야구가 가장 끌렸던 것은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이유가 간단하지 않아 분석하기 좋은 스포츠가 바로 야구”라고 말했다. 그에게 야구는 분석해야 할 하나의 연구대상이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팀플레이적 요소가 적어 개인의 기록을 데이터화해 분석하기 좋다. 게임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처럼 한 선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야덕이 되는 다른 이유 중 하나다. 한 선수가 프로 구단 입단 당시에는 뛰어난 성적을 보이지 않았지만 차츰 기량을 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팬으로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이외에도 야구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남성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듯 단순히 선수를 좋아하는 여성 팬덤도 흔하다. 극장과도 같은 야구장 분위기, 응원 문화 등도 수많은 야덕을 양성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꼽힌다.
“진정한 ‘야덕’은 보는 것에 그치지 않죠” |
커뮤니티 상의 활발한 활동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진다. 야덕들은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밤이 새도록 야구 이야기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현재 춘천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는 야덕 오연우(28)씨는 “지금 인생에서 야구는 다른 무엇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온라인에서 같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구독자 24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프로동네야구’ 등과 같이 각종 야구 관련 유튜브 채널도 야덕들의 주 활동 무대 중 하나다. 야덕들의 유튜브 채널들은 야구 기술과 예능을 적절히 섞은 영상들을 업로드한다. 이런 채널들 덕에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도 부담 없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야덕들에 따르면 야구에 대한 사랑은 경증에서 중증으로 발전한다. ‘중증 야덕’의 경우 선수마다 다른 응원곡을 전부 외워 매번 직관하는 것을 물론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한다. ‘야구공작소’ 회원 남통현(32)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제일 처음에 좋아한 팀이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였다”며 “그 팀의 소식들을 알기 위해서는 해외 사이트를 뒤지다 세이버 스펙 같은 데이터 관련 글들을 많이 읽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단계 더 들어간 이들은 아예 세계 곳곳에 있는 유명한 야구장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남겨 기록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베이브 루스, 조 디마지오 등 메이저리그 전설들의 물건을 사모으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덕후를 넘어 야구계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
사실 기자 본인은 야구를 좋아했지만 마음을 접은 ‘냉담자’였다. 좋아하는 팀의 성적이 최근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덕들과 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야구 관련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평소에는 보지 않던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야구구단’ 게임을 하는 시간도 점점 늘었다. 야덕의 스토브 리그가 시작된 것이다. /이종호 정혜진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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