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서초동 야단법석] 정치권 뛰어드는 판사들, 사법부 중립성 훼손 논란 잇따라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현직 판사들이 잇따라 사표를 내고 정치권에 뛰어들면서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합니다. 단순한 재판 공백을 넘어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여가 커지고 있어서죠. 최근 법복을 벗은 판사 중 일부는 여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서라며 노골적으로 사퇴 이유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치하는 판사는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논란이었습니다. 2017년 5월 김형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갑자기 사직한 뒤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기용됐습니다. 김 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대대적으로 비판한 판사 중 하나입니다. 김 판사는 법무비서관으로 일하다 지난해 5월 차관급인 법제처장으로 영전했습니다.

법무비서관이 공석이 되자 김영식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새로 임명됐습니다. 김 전 판사는 2018년 말 사표를 제출했는데 갑작스런 사직에 법조계에서는 청와대 비서관에 내정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그는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게시판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3개월여 뒤 청와대로 출근했습니다.



새해 들어서도 정치권 입성을 위해 법복을 벗는 판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정치권 영입 제안을 받아 지난 13일 법원을 떠났습니다. 최 판사는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도 역임했습니다. 최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을 정치적 거래로 삼아 사법권의 독립을 부정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최 판사는 총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정치권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7일에는 이수진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직했습니다. 이 판사는 현직에 재직할 당시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로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 법원 내부에서도 적잖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판사도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어 15일에는 장동혁 광주지법 부장판사가 사직서를 냈습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총선 출마가 유력하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판사도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출마의 자유가 있고 선출직에 도전할 수 있는 피선거권이 보장되는데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금도 국회에는 판사 출신 의원이 여럿 있습니다. 같은 법조인인데 검사는 정치권에 뛰어들어도 되고 판사는 가로막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판사 경험을 살려 더 훌륭하게 입법 활동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과 지적은 ‘판사는 사법부의 중추’라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대기장소인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재판 때문에 법원에 갈 일이 평생 동안 손에 꼽을 정도겠지만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아 본 사람은 비로소 판사의 권한과 위상을 체감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유죄 여부와 형량 기준을 결정하는 권한을 전적으로 판사가 쥐고 있기 때문이죠. 재판 결과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사법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판사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법부의 권한도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지난 2017년 12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용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김명수(왼쪽) 대법원장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는 기능과 역할이 구분됩니다. 사법부는 특히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곳입니다. 똑같이 나라에서 월급을 받지만 판사에 대한 징계수위가 어느 공무원보다 느슨한 것도 사법부의 독립성과 법관의 독립적 지위를 보장해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고 사법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하는 판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도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현직 판사의 정치권행을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달 초 국회가 판사 퇴직 후 2년 내에는 청와대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한 법원조직접 개정안을 의결한 것처럼 선출직 출마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법원행정처가 다음달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음에도 총선에 출마하려는 판사들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며 오히려 이를 방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직을 표한 판사의 사표를 제때 수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판사는 검사보다 더 엄격한 도덕성과 윤리기준이 요구되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사법부의 권한이 생기는 것”이라며 “판사가 사직 후에 정치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일정기간 자제 내지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