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신임 외무상으로 임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19일 지난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하면서 이번 인사로 북미 대화는 물론 남북 관계 환경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원회의에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대북 제재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새로운 노선을 발표한 데 이어 그간 대미 관계를 ‘협상’으로 이끌어온 리용호 외무상을 내리고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을 외무상에 앉혔다는 점에서다.
북한의 외무상 교체 소식은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NK뉴스 설립자인 차드 오캐롤은 18일(현지시간) “복수의 평양 소식통을 이를 확인해 줬다”며 “향후 북한의 외교적 입장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북한의 공식 인사 발표는 오는 23일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신임 외무상 리선권은 전통적인 외교 엘리트가 아니고 과거에 장기간 군부의 이익을 대변해온 인물”이라며 “향후 북한 외교에서도 핵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려는 군부의 입장이 더욱 크게 반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남북관계에도 긍정 영향 가능성 낮아”
또 정 센터장은 리선권 외무상 체제는 남북 관계에도 긍정적 역할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지난 2018년 남북 고위급 회담의 북측 대표를 맡는 등 남북 대화의 전면에 나섰던 경력이 있긴 하나 북한 체제에서 외무상은 기본적으로 한국을 제외한 비사회주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외교를 전개하는 직책이란 점에서다. 정 센터장은 “북한이 전원회의에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 입장을 노선으로 채택하고 그에 맞게 외교 라인도 대폭 개편한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이 계속 ‘희망적 사고’에 기초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만 집착한다면 한국의 안보환경은 더욱 악화 될 수밖에 없다”며 “한국 정부도 기존의 외교·안보·대북 라인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 관계를 아는 리선권의 임명은 북미와 남북 모두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나가지 못하는 외무성과 외교관을 질책하는 효과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양 교수는 “신중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외무상이라도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리선권은 누구?
북한의 신임 외무상으로 알려진 리선권은 군 출신으로,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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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권은 지난 2004년 6월 제 22차 남북군사실무회담 북측대표를 시작으로, 남북 군사회담을 담당했다. 2011년 2월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우리측이 천안함을 언급하자 “우리와 무관한 사건”이라며 돌연 퇴장하기도 했다.
지난 2018년 1월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시작으로 남북 대화 재개된 이후에도 대남 관계에 있어 저돌적인 모습과 거침없는 발언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남북고위급 회담 당시 리선권 단장은 우리 측 단장인 조명균 통일부 전 장관에게 “핵 문제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가 보유한 최첨단 전략무기는 우리 동족을 겨냥하는 것도,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는 것도 아니다”며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 수소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모든 최첨단 전략무기는 철두철미하게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8년 9월 남북 평양 정상회담 이후에는 평양에서 리선권과 접촉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후일담이 전해졌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3선을 축하하면서 “옥탑방에서 땀 좀 흘렸죠?”라고 말했다고 박 시장이 전했다.
심지어 방북 재계 인사들에게는 핀잔 섞인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무례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 손경식 CJ 회장 등과 옥류관에서 오찬으로 냉면을 먹던 도중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복수의 목격자들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이를 두고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 달 여 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조명균 당시 장관에게 관련 발언을 확인하면서 “면박을 주는 것이 의도적인 게 아니겠냐”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했다, 국민의 자존심도 지켜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뿐이 아니다. 리선권은 같은 해 10·4선언 11주년 기념식 참석차 방북한 정치인도 농담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김태년 당시 정책위의장을 가리켜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독설에 가까운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발언이 차후 알려져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말이라는 게 앞뒤의 맥락을 잘라버리면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받았던 그 엄청난 환대에 비하면 그 환대를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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