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명예회장은 평생 신의를 생명처럼 여겼다. 해방 후 일본 내 한국인이 귀국하는 와중에도 ‘나를 믿고 돈을 빌려준 사람을 두고 갈 수 없다’며 비누와 크림 등을 팔아 5만엔의 빚을 모두 갚았다. 이후 시작한 사업이 바로 롯데의 뿌리인 껌이다. 신의에 대한 집착은 고객 제일주의와 외형보다 내실을 중시하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의 철학으로 이어졌다.
관광 산업은 그의 인생을 관통한 정열과 선구자적 사업감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던 신 명예회장은 1973년 국내 최고층 건물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을 건립한 데 이어 “언제까지 고궁만 보여줄 수 없지 않느냐”며 기어이 123층 잠실 롯데타워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경영권 분쟁의 와중에서 드러난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황제경영에 대한 비판은 그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경영진을 해임하는 모습과 난수표처럼 해독하기 어려운 순환출자의 고리는 되풀이돼서는 안 될 국내 대기업의 후진적 경영의 단면이고, 이는 후계자인 신동빈 회장이 반드시 바꿔나가야 할 숙제다.
정부 역시 그의 타계를 계기로 서비스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후진적 규제들을 털어낼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개발시대 제조업 위주의 한국 산업계에서 관광과 유통 등 서비스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그의 선도적 기업가정신은 이해집단에 휘둘려 오색 케이블카조차 만들지 못하는 오늘의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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