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의 비판정신이 사회를 바꿔놓은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헤밍웨이 마르크스 등 한때 기자로 활동하면서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며 시대를 바꿔놓은 기사를 썼던 인물입니다. 1,2차 세계대전 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역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빈곤, 불평등, 폭력 등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아직 쌓여있습니다. 우리사회가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과거에서 찾아보면 어떨까요.”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네스트 헤밍웨이, ‘1984’로 알려진 작가 조지 오웰, ‘자본론’으로 경제사상의 기틀을 마련한 카를 마르크스 등 20세기의 거대 사상과 철학적 담론을 만든 세 사람의 공통점은 저널리스트.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 등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헤밍웨이, 유복한 가정과 안락한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사회주의자로 철저하게 저항하며 아웃사이더로 살며 BBC 등에서 일했던 조지 오웰 그리고 ‘자본론’으로 20세기 경제 가치와 사상의 기틀을 잡기 전 독일 라인 주에서 발행됐던 라인신문에서 일했던 마르크스. 이들은 청년기에 투철한 저항정신으로 무장하고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들이었다. 그들이 쓴 기사와 짧은 글은 파편처럼 흩어져있어 기자로 활동할 때 어떠한 생각으로 기사를 썼는지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김영진(사진) 코스마포피에프브이 대표이사는 이들이 쓴 기사와 짧은 글을 모으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 시작한 작업은 5년에 걸쳐 ‘더 저널리스트, 총 3권(한빛비즈 펴냄)’로 완간됐다. 책을 기획하고 자료를 수집해 책으로 엮어낸 기획물은 국내 출판계에선 드문 사례다.
어릴 때부터 정치와 언론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미국 듀크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국내 외국계 금융회사를 거쳐 외국계 부동산 시행사 코스마포피에프브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사실 그는 이른바 금수저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안락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19대 대선 당시 한 정당의 외신팀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제도가 올바르게 갖춰져 있어야 우리 사회에 소외계층이나 억울한 사람들을 줄일 수 있다”면서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득권층이다. 그들이 소외계층을 포용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지 않는다면 그들의 억울함은 해소할 길이 없다. 기득권층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언론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표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데 언론이 현장을 정확히 취재하지 않고 사실을 왜곡보도한다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라고 덧붙었다.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1935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제국을 침략했을 때 헤밍웨이가 1936년 종군기자로 에스콰이아지(Esquire)에 쓴 기사 한편(제목: Wings always over Africa)을 인터넷에서 읽고 전쟁의 참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면서 “종군기자로 헤밍웨이가 현장을 취재하지 않았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내친김에 20세기 유명 저널리스트들을 찾기 시작했다. 오웰, 마르크스 등이다. 밀레니얼세대답게 그는 인터넷 위의 정보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며 원하는 자료를 끝까지 찾아냈다. 미국의 주요 대학의 전자 도서관은 물론 국회도서관 디지털자료 등 세 사람의 원문을 찾아 떠난 검색의 항해는 멀고도 지난했다. 심지어 여행차 런던을 방문했을 때 아예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인터넷에 중고서점을 뒤져 헤밍웨이가 쓴 글을 모아둔 책의 초판을 구할 수 있었다”면서 “홈페이지는 분명 미국 중고서점이었는데, 알고 보니 네델란드에 있는 중고서점에서 올린 서지정보였는데, 받고 보니 책값보다 배송비가 더 나오기도 했다”며 웃었다.
기득권 세력이 앞장서서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페미니즘 문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맨박스’의 저자는 덩치 큰 흑인 남자인데 여성 차별 문제를 남성의 눈으로 접근해내 더욱 사회적 이슈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면서 “기득권 세력이 더 많은 부와 자산 그리고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들이 나서 소외계층을 껴안는 정책을 만든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1853년 3월 15일 뉴욕 데일리에 마르크스가 쓴 기사에는 교수형, 총살형, 추방형 등 형벌의 종류가 여러가지인데 심지어 굶겨 죽이는 잔혹한 형벌도 있었다”면서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마르크스가 쓴 기사에 나온 ‘굶겨 죽이기’라는 잔혹한 형벌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거대담론을 제시하기 보다 모두가 평범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가진 자가 없는 자를 포용하고 그들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나갈 때 민주주의는 더욱 발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편역자라는 낯선 이름으로 책을 만든 김 대표는 다음 책은 자신의 힘으로 원고를 모두 채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정치를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난해 미국정치 관련 자료를 수집하면서 원고를 쓰고 있다. 한국과 닮은 부분이 많은 미국의 정치를 한국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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