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감독)은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암살하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을 중심으로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의 과열된 ‘충성 경쟁’을 담담하게 좇는다.
이병헌은 극중 권력 2인자였던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아 국가와 대통령을 향한 충성을 했던 그가 변화하게 된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이병헌은 “기술 시사회 때 처음 보고 감독님한테 웰메이드 영화라고 얘기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배우들은 영화를 찍고 나면 아무래도 객관성을 잃기 쉬운 입장인데 영화의 완성도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병헌은 그는 만약 ‘남산의 부장들’이 누군가를 영웅화하거나 정치적인 견해를 피력하려는 영화였다면 아마 고사했을 거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영화 작품을 결정할 때 이야기를 보고, 그 안에서 연기할 캐릭터의 심리를 표현하고 싶은지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다. 이번 영화는 “온전히 이야기의 힘과 아주 예민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민호 감독의 말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10.26 사건을 굉장히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서, 그 때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과 서로 간의 관계, 그 심리가 어떨지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이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드는 것 자체가 (10·26 사태) 주제로 만들었던 다른 영화와 차별을 가지는 지점이 아닌가 싶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배우에게 ‘고민’은 물론 ‘절제’ 를 불러일으켰다. 이병헌은 “저를 설득시키고, 타협하는 상황이 많았다. 왜곡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픽션 영화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창조하는 것이 있고 자유롭게 그 안에서 노는 재미가 있는데 이번 영화 같은 경우에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근현대사에 가장 큰 사건이기하고 실존 인물을 다뤘다. 개인적인 생각과 애드리브나 감정의 어떤 선에서 자유롭게 놀 수 없었다. ”
‘남산의 부장들’의 연출색도 다르다. 이병헌은 “우민호 감독이 이 작품을 찍으면서는 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역사와 실존 인물을 다룬 까닭인지 굉장히 차갑게 연출했다”고 소견을 더했다.
김규평이 박통을 저격하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도 미스터리하게 그려진다. 이병헌은 “우리 영화가 정답처럼 규정 지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미스터리한 부분은 미스터리하게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어느 촬영 현장보다 연기할때 더 조심스러웠다”고 얘기했다.
이병헌은 다큐멘터리, 실제 영상들, 여기저기서 들은 증언들 등 모든 것들을 참고했다. 그는 김규평의 주된 감정에 대해 “존경과 충성이 기본 베이스가 아닐까”라며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자제하면서도 할 말을 하는 캐릭터다. 직장에서 느껴지는 일반적인 감정도 이들에게 대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실제 그 역사적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지 않을까 하며 유추해보는 지점은 있었다. 내면적인 부분이나 심리상태 같은 부분에 집중했다”고 연기의 주안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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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평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애써 머리를 쓸어 넘긴다. 특별하 대사 없이도 예민하고 초조해보이는 인물의 심리가 바로 읽혀지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마지막에 김재규가 법정에 섰을 때의 모습을 보고 생각해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감옥에서 헤어 제품을 쓸 수 없어서, 예전처럼 깔끔하게 머리를 고정시키지 못해 흘러내리는 머리를 계속해서 쓸어 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이를 인물의 심리 표현쪽으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후반부 몰입력은 대단하다. 특히 김규평이 ‘거사’ 이후 방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이는 인물이 객관적으로 상황을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장면이다. 이병헌은 “엄청난 일을 저지른 후, 주관과 객관을 왔다갔다 하는 상태였을 거라 생각하며 연기했다.“ 고 말했다. 피에 넘어지는 건 장면은 감독과 이병헌 배우가 의견을 나눈 후 넣은 장면이다.
그는 “패닉에 가까운 그 감정 상태를 쫙 힘있게 밀어붙이다가, 어떻게 생각하면 되게 주관적인 느낌으로 가다가 그 방의 광경을 순간적이지만 잠깐 객관적으로 살짝 느끼고 다시 정신없이 주관적인 감정으로 간다고 봤어요. 그런 순간이 있으면 더 현실적이고 드라마틱한 느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주관과 객관이 왔다 갔다 하는 또 하나의 장면이 차 안에서 피에 젖은 양말을 만지다가 내 손에 묻은 피를 보는 순간이다. 그 두 군데 정도가 객관적으로 삭 빠졌나갔가 들어가는 순간이라고 봤다”
‘남산의 부장들’은 웰메이드 정치 영화이자, 느와르 영화의 매력도 간직했다. 이병헌은 자신이 출연한 ‘달콤한 인생’과 감정이나 정서가 가장 닮은 것 같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느와르가 가진 감정, 즉 충성 배신 애증 등 그런 심리를 연기하고 싶은 욕망이 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이병헌은 이후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사진=쇼박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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