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구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연구를 위한 행정이 너무 과도하고 복잡합니다. 가령 출장을 한번 가려면 도착지까지 거리를 계산해야 합니다. 갔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해 영수증을 필히 구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가는 중간에 커피나 껌 등을 일부러 구입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 회의장 사진을 찍어 제출하기도 합니다.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건지 행정을 연구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비단 한 연구자의 호소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 역시 연구현장에서 30여년간 근무한 연구자로서 많은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R&D)을 수행하는 연구자라면 합당한 기준에 따라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과도한 연구행정 부담이 연구자에게 전가될 경우 연구자의 연구몰입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현장의 애로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정부 역시 이에 공감하며 연구행정 간소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전 부처에 공통 적용되는 연구개발규정을 개정해 연구비 집행의 자율성을 높이고 부처별로 제각각 운영해 오던 연구비관리시스템을 통합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은 충분치 않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전 부처에 공통 적용되는 연구개발규정이 있음에도 각 부처별로 개별 법률을 운영하고 연구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지침과 보수적인 업무 관행도 공고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이상 정부의 노력이 현장에 적용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악순환은 계속될 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7월부터 ‘과학기술 현장규제 점검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의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은 대학·출연연구기관·기업 등 현장을 직접 방문해 연구와 행정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애로점을 청취하고 현장의 불합리한 규제적 요인들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대학 등 35개 기관을 방문했으며 연구비 집행 등 연구관리 전반에 걸친 현장 규제를 발굴했다. 현재 발굴된 현장 규제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파급성과 시급성을 고려해 올해 순차적으로 개선안과 이행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모든 정책은 현장에 답이 있다.’ 정책을 추진해오면서 더욱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번 작업은 그간 정부가 발표해온 소재·부품·장비 대책과 같은 거시정책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의 눈높이에서 시작된 만큼 실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될 것이다. 작지만 큰 변화를 기대한다. 나아가 이번 작업을 통해 현장의 보수적인 문화와 관행을 개선하고 정부와 연구자들이 서로 신뢰하는 성숙한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소망해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