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 국내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 늘고 일본과 독일 등에서는 이미 2차 감염을 통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지역 전염의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공항 검역과 지역사회 방역망과의 연계를 통한 ‘이중 저지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 저지선을 총지휘할 정부당국은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29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확진자의 접촉자 수는 전일보다 다소 증가한 387명으로 집계됐다. 접촉자 수가 갈수록 늘면서 지역사회의 2차 감염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세번째·네번째 확진자의 경우 무증상으로 입국해 통제 없이 외부활동을 한데다 자각증상을 느끼기 전까지 수시로 타인들과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중국 우한 입국자 3,023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검역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 같은 조치가 감염자의 입국을 원천 차단하는 효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잠복기가 최대 14일인 만큼 공항 검역만으로는 무증상자를 걸러내거나 2차 감염을 예방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전병률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세번째·네번째 확진자의 추이를 2주간 지켜보면서 이들이 접촉한 사람들이 2차 감염됐는지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며 “아울러 중국 입국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제대로 컨트롤하는 봉쇄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항의 검역은 강화된 모습이다.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 서편 통로 검역대에서는 중국 톈진에서 입국한 승객에 대한 검역이 한창이었다. 100여명이 두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검역관은 총 5명. 탑승객들은 자신의 차례가 오면 검역대에 가서 기내에서 작성한 건강상태질문서를 제출하고 체온 측정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발병 이후 중국 국적자나 중국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한국 방문객이라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검역대 뒤편의 선별진료소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선별진료소는 검역대에서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다고 신고한 환자들을 위한 심층상담소다. 역학조사관의 판단하에 이곳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의심자로 판명되면 국가지정병원에 격리될 수 있다. 김한숙 인천공항검역소 검역1과장은 “베이징에서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어제는 탑승객들이 먼저 집에 가기 꺼려진다며 선별진료소에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향후 1~2주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설 명절이 끝난데다 중국 춘제 연휴도 다음달 2일로 끝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잠복기 입국자인 ‘무증상 입국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공항 검역망에서 무증상 검역자 전원을 통제할 수 없는 만큼 지역사회 차원의 방역체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병원은 긴장 상황 속에서 차분히 대응하는 중이다. 선별진료소를 비롯한 격리 시스템을 점검했고, 전날까지 먹통이 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질병관리본부 상담센터 1339 역시 이날부터 상담원을 새로 투입하고 민원 접수 창구를 분리해 연결시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메르스 사태 당시와 비교했을 때 시스템이 훨씬 정비됐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항 검역망과 지역 방역망의 컨트롤타워인 ‘정부당국’의 우왕좌왕 행보는 방역현장 일선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전세기로 유증상자를 포함한 모든 교민을 귀국시키겠다”는 발언을 한 지 6시간 만에 “무증상자만 입국시키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의 발언 역시 전날 외교부의 “유증상자는 귀국이 어렵다”는 입장을 뒤집었던 만큼 교민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일단 증상이 없는 척하고 전세기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을 정도다. 정부의 말 바꾸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한 직항편 폐지, 입국자 전수조사, 전세기 입국자 격리장소 선정뿐 아니라 확진자와 접촉한 인원수까지 입장이 번복되고 있다.
/인천=이주원·우영탁·박홍용기자 joowonmai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