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을 애타게 기다린 중국 우한 교민들을 이송하기 위한 대한항공 전세기가 30일 밤 우여곡절 끝에 인천공항에서 날아올랐다. 우한 교민들은 중국 정부가 지난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 차원에서 갑자기 도시 봉쇄령을 내린 이후 꼼짝없이 현지에 발이 묶였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내 우리 교민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세기 이송 관련 정부 신속대응팀을 이끌고 있는 이태호 2차관은 이날 출국에 앞서 “우리 국민이 어디에 있든지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게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이륙 직전까지도 정부의 전세기 투입 계획은 난항을 여러 차례 거듭했다. 출발 시간, 투입 대수, 탑승 방식, 귀국 후 격리 장소 등이 모두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현지 교민은 물론 국민 전체의 불안감이 커졌다. 갑작스럽게 터진 세계적 감염병 확산 사태라고는 하나 관계 부처가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 여러 차례 노출 됐기 때문이다. 불시에 닥치는 보건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간신히 받은 운항 허가…2차 투입 ‘미정’
이 차관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우한에 체류하는 교민 귀국을 지원하기 위한 전세기 운항 허가가 중국 정부로부터 지금 막 나왔다”며 “항공편 운항 일정이 다소 조정됐지만 당초 오늘 귀국을 원했던 국민을 내일 새벽에 모시고 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차 탑승객 외에) 나머지 귀국을 원하는 분도 조속히 귀국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와 협의 중”이라면서 나머지 전세기는 아직 중국 당국의 운항 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정부는 이날 오전 10시와 정오 두 차례에 걸쳐 두 대의 전세기를 중국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새벽 교민들은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출발 일정이 잠정 연기됐다는 사실이 주우한총영사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지됐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교민 이송 지원을 요청하고, 왕 부장이 이를 약속했다는 소식에 안도를 했던 터였다. 하지만 대한항공 전세기가 우한으로 제때 들어오지 못하면서 교민들은 감염병에 대한 공포에 더해 불안감까지 떠안아야 했다.
물론 이날 전세기 일정이 틀어진 국가는 한국 만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우한으로 보낸 전세기는 현지 출발이 지연됐다. 이에 영국 외교 당국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국민들에게 밝혔다. 캐나다 등지에서도 자국민을 위한 전세기 투입을 계획했지만 쉽사리 진행되지 않았다. 미국도 전세기로 1차 자국민 이송을 마무리하기까지 중국 정부와 여러 차례 협의를 해야 했다.
이에 중국 정부가 외국인의 ‘우한 탈출 행렬’이 중국 국민들을 동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 정부 전세기가 낮 시간이 아닌 밤에 움직이게 된 점도 이런 추측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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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 아사히신문은 자국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우선 미국과 일본이 (전세기) 발착 몫을 배정받았다. 중국이 어떤 나라를 중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보도해 한국 등 다른 국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일단 절반 360명 김포로 귀국…무증상자 우선
정부는 일단 전세기 한 대에 대해서만 중국 정부의 허가가 남에 따라 당초 계획과 달리 한번에 최대한 많은 교민을 이송하기로 했다. 처음엔 좌석 간격을 두고 앉게 하는 방식으로 혹시 모를 기내 감염을 막겠다는 계획이었으나 2차 전세기 허가가 언제 날지 모르는 만큼 이들에게 N95 마스크를 착용하게 한 후 좌석 여유분을 최소화해 앉히기로 했다. 이럴 경우 탑승 가능 인원은 귀국 신청자의 절반 정도인 360명이 된다.
정부는 우한 현지에서 양국 의료진·검역관의 검역을 거쳐 ‘무증상자’만 이송하기로 중국 측과 합의했다. 또 교민들은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 후 전원 실시간 유전자증폭 검사인 ‘RT-PCR’을 받고 14일간 1인1실에서 격리된다. 격리지는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이다. 외부 출입과 면회도 금지된다. ‘RT-PCR’는 질병관리본부가 자체 개발한 검사로, 극미량의 바이러스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발현되지 않은 잠복기 환자도 잡아낼 수 있다.
또 교민들은 격리 기간 동안 매일 두 번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증상이 발견되면 즉각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으로 이송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족 구성 등 교민들이 편안하고 우리가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방을 배분할 것”이라며 “주민들은 어떻게든 납득하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격리 장소를 놓고 지역 민심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일부 진천 주민들은 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서 이날 늦은 밤까지 시위를 했다. 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정부 질타도 있었다. 사전 협의 부족으로 지역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는 것이다.
/정영현·이주원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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