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올해 법관 정기인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장을 교체하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건을 맡은 재판장을 유임시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 재판은 늦어지고 사법 적폐 등 전 정권 관련 재판 진행은 속도를 내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는 여성 법관과 경력 법관을 대거 임용하는 탕평 인사를 단행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사법부가 인사권 행사로 김 대법원장의 친정체제를 공고히 하는 한편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법원행정처는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법관 정기인사 명단을 발표하고 922명에 대한 전보인사를 24일자로 단행한다고 밝혔다. 직책별로는 지방법원 부장판사 386명, 고등법원 판사 56명, 지방법원 판사 480명이다. 퇴직 법관은 31명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는 게 법원행정처의 설명이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의 부인 정 교수의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송인권 부장판사가 전격 교체되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송 부장판사는 지난 2017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부임해 만 3년째 근무했다. 통상 2~3년을 주기로 판사 인사가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을 맡은 재판장을 교체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사모펀드 투자와 입시비리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 교수 재판장이 이번에 바뀌면서 1심 선고는 일러야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중요 사건을 놓고 정권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명 ‘드루킹’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항소심 재판부에도 변화가 생겼다. 김 지사 사건의 재판장인 차문호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 부장판사는 잔류했지만 같은 재판부 소속 최항석 판사가 광주고등법원으로 발령 났다. 김 지사의 항소심 선고는 지난해 12월 나올 예정이었지만 재판부 내부에서 김 지사의 범죄 혐의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일정이 늦춰졌다.
반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 전 차장 사건의 재판장인 윤종섭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부장판사를 유임됐다. 윤 부장판사는 2016년 2월 부임해 만 4년째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법개혁을 기치로 내건 김 대법원장이 적폐 사건을 심리해온 판사는 남기고 현 정권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장을 교체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현 법무법인 세창 변호사는 “온 나라를 반복과 갈등으로 내몰았던 정경심씨 담당 판사는 교체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을 심리하는 법관을 잔류시킨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인사”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사법행정을 실천하겠다는 김 대법원장의 취지를 공감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법원 인사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에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 다시 내정됐다. 전임 김영훈 심의관이 서울고법 판사로 복귀하고 대전지법 안희길 판사가 신임 심의관으로 임명됐다. 법원의 핵심 요직으로 꼽히는 인사총괄심의관에 또다시 김 대법원장 측근이 내정되면서 판사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가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최근 인사권 행사를 통해 연일 검찰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보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이번 법관 정기인사에서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경력 법관과 여성 법관을 대거 기용한 것도 김 대법원장 출범 후 달라진 사법개혁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남성 법관 일색이었던 법원행정처 부서장에 윤경아 윤리감사관을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지성·윤경환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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