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감염병 공포가 또다시 엄습하고 있다.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 나라마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데 비상이 걸렸다. 특히 중국과 경제교류·인적자원 이동이 활발한 우리나라로서는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미 3차 감염자까지 나오면서 지역사회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우리 정부가 대응 과정에서 지나치게 중국의 눈치를 본다는 점이다. 여행제한 조치만 하더라도 당초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지난 2일 중국 전역에 대한 여행경보를 ‘철수권고’로 높이면서 관광 목적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가 2시간 뒤 ‘검토’로 슬그머니 바꿨다. 관광 목적의 중국방문도 금지하기로 했다가 ‘검토 계획’으로 후퇴했고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다던 여행경보도 ‘지역에 따라’로 완화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정부 태도가 확 달라진 이유는 뭘까. 정황을 놓고 보면 중국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대사를 비롯한 중국 정부 관계자들의 반발이 잇달아 나온 이후 우리의 조치내용이 달라진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해제와 시진핑 주석의 방한 등 현안 해결에 차질을 우려한 정부가 서둘러 꼬리를 내려버린 것이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이다. 우리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여행제한 조치를 대폭 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싱 대사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근거에 따르면 된다”는 말로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협력해서 풀자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며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싱 대사를 두둔했다. 상대국 대사가 내정간섭성 발언을 했는데도 청와대가 서둘러 문제 봉합에 나선 모양새다. 이는 북한 개별관광을 둘러싸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 낯을 붉힌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해리스 대사가 개별관광에 대해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에서 다루는 게 낫겠다”고 하자 “부적절하다”며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미국 대사의 발언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고 대들면서 중국 대사의 발언은 행여 오해라도 생길까 ‘친절히’ 해석까지 해주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나라가 중국의 눈치를 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17년 10월에는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사드 배치가 현안으로 부상하자 우리 정부는 3불(3不) 약속을 덜컥 해버려 굴욕외교 논란을 자초했다. 사드 추가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제 참여 포기 등 주권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을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 측에 양보해 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 대통령의 방중이 우리 국익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행기자단이 대통령 면전에서 중국 공안에게 폭행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졌는데도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이나 그 후 행사에서 이 사건을 일절 문제 삼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되풀이되는 미세먼지도 마찬가지다. 중국발 미세먼지 피해가 한중일 3국 전문가들의 공동연구에서 명확히 규명됐는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제대로 문제제기도 못했다. 정상회담 발표문에는 “환경문제는 국민들의 삶의 질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데 공감했다”는 물에 물 탄 듯한 내용만 담겼다.
중국은 강한 자에게는 유화 제스처를 취하지만 약한 자에는 고압적인 자세를 보인다. 이렇듯 중국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익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면서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준 대가로 우리가 얻어낸 것이 무엇인가. 물론 중국과 협력할 일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저자세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 우리가 할 말은 당당하게 해야 한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질병 문제는 더 그렇다. 혹시라도 경제적인 상황을 걱정한다면 기술 초격차를 벌려 중국이 경제보복을 할 엄두를 못 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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