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 참가조건만으로 수 억 원의 현금을 납부하도록 강제하는 정비사업 조합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소규모 정비사업 단지에서도 설명회 참가조건으로 입찰보증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택지난에 입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합들의 힘이 갈수록 세지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건설사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동 A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를 내면서 참여하려는 건설사에 입찰보증금 20억원 가운데 10억원을 현장설명회 전까지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해당 사업은 지하 3층·지상 10층, 79가구 등을 짓는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151가구 규모의 서울 고덕 B 조합은 현금 10억원을 현장설명회 전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200가구 미만의 가로주택정비사업인 장위 구역 내 조합들도 현장 설명회 조건으로 3억~5억원을 요구했다.
정비사업 조합이 시공사에 현장 설명회 전 보증금을 요구하는 것은 최근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해 한남3구역 재개발 조합은 입찰 보증금 1,500억원 가운데 현장설명회 보증금으로 시공사에 25억원을 선납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밖에 다수의 대형 정비사업 조합들이 현장설명회 참가 조건으로 수억원의 입찰 보증금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소규모 정비사업지까지 확산 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택지난에 사실상 ‘갑’이 된 정비사업 조합들이 대형 건설사만을 받으려 하면서 중소 건설사들의 어려움은 더 가중되고 있다. 과거 사업장이 충분했을 때는 대형 건설사들이 대형사업에만 집중했지만 최근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 위축되면서 지방 소형 사업장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열린 대구 중구 도원아파트 가로주택정비사업 현장설명회에는 현대건설·포스코건설·태영건설·쌍용건설·한진중공업 등 10곳이 참여했다. 해당 사업은 공사비가 700억원에 그치는 소규모 사업이지만 택지난에 도급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대형건설사인 현대건설·포스코건설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과거 건설경기가 좋았을 때는 소규모 사업장들을 입찰받는 등 중소 건설사들도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며 “최근 택지난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 건설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혁준기자 awlkw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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