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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경쟁촉진법을 기업 길들이기수단 악용… 3류가 1류를 가르치려 들어선 안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스튜어드십 코드는 오너경영 한국환경에 맞지않아

국민연금 기업부담 절반인데 발언권은 20분의3 불과

기여도에 맞게 기금운용위원회 지배구조 확 바꿔야

경영간섭 말고 가만히 놔 두는 게 최고의 기업정책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현 정부 들어 경제생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며 “기업경영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보다는 가만히 두는 것이 최고의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상법·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경제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달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들 법안이 사외이사와 주주총회에까지 관여와 통제를 확대하는 반시장적 정책의 상징이라며 재계가 반대했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스튜어드십코드’ 등 국민연금을 동원한 경영 간섭도 멈추지 않을 태세다. 이 와중에 중소벤처기업부는 기술유용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상생협력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재계의 거듭된 재고 결정을 무시한 정부의 일방통행이 계속되면서 그렇잖아도 흔들리는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상사법학회장과 기업법학회장 등을 지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를 지난 5일 만나 상법 개정안 등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봤다.

-재계가 참담하다고 할 정도다. 무엇이 문제인가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문제다. 상법 시행령은 직업 선택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 계약의 자유를 제약하고 자유민주주의 법률의 기본원칙인 ‘사적 자치의 원칙’을 붕괴시킨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경제적 자유가 더 중요하다. 정치적 자유도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활동을 국가가 직접 통제하면 경제적 자유가 침해되고 생존권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의 경제활동 자유를 보장하면 국민이 부자가 되고 국가가 부강해진다. 지금 한국은 불행히도 경제생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나.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라, 이사회에 노조원을 포함하라, 이사회에 여성을 반드시 임명하라, 임원의 세부 경력을 공시하라, 감사(위원)를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라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것들이 쓸데없는 간섭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규제이다. 내년부터는 주주총회 1주일 전에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했다. 이는 주주총회를 3월 말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내 주주총회를 분산하려는 본래의 의도와 반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 전경련·대한상의·경총·상장사협의회 등이 계속 세미나 등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호소·읍소도 하고 있으나 정부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완전 불통이니 개별 기업은 오죽하겠는가. 참담한 심정일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법도 기업에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국민연금에 ‘5%룰’ 완화 적용을 보장해 국민연금이 이른바 스튜어드십코드를 폭넓게 이행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중점관리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대상 기업과 대화를 이어왔다. 주로 배당, 임원 보수와 이사 선·해임과 관련한 정관 변경, 주주제안 등 주주로서 또는 수탁자로서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왔다. 그러다 지난달 7일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공정경제’가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특히 스튜어드십코드를 언급하며 “시행령 등의 제ㆍ개정을 통해 정착시키고 대기업의 건전한 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을 곧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는 국민연금이 추진해야 한다. 배당, 임원 보수, 임원 선임과 해임 같은 지배구조 문제, 주주제안 등에 대해 훨씬 간섭이 쉬워졌다. 이 과정에서 본법인 자본시장법 규정과 충돌하는 규정도 나타났다.

-외국은 어떤가.

△주주총회에서 감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참 대단한 나라다. 무엇이든 한국에 들어오면 단단한 바위로 변한다. 세계 200개 나라가 독점금지법을 가지고 있지만 독점금지법은 본래 경쟁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런 목적 추구에는 무신경하고 대기업 감시 법률로 왜곡해 대기업 잡는 법률로 운용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영국에서 발생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영국 기업에는 주인이 없다. 주인 없는 기업은 경영자가 사익을 편취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시를 기관투자가들에 맡긴 것이 스튜어드십코드다. 오너경영 체제인 한국에는 전혀 맞지 않은 제도다. 일본은 종신고용으로 나태해진 경영진과 기관투자가가 대화해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하자는 아베 신조 총리의 기업가정신 고취 프로그램 중 하나로 도입됐다. 또 자율규범이라 이를 준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제재를 가할 수단이 불충분하다. 그러나 한국은 공정경제 달성, 바꿔 말하면 재벌 또는 대기업 길들이기를 위한 수단 정도로 인식돼 기업들이 매우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 정부가 나서 국민연금에 기업 경영 개입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더 잘 감시할 수 있도록 시행령까지 개정한 형편이라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것 같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국내주식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을 정비해 기업경영 간섭절차를 완비했고 정부는 국민연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아래 3개 위원회를 설치했다. 그 중에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있는데 이 기구는 기업 배당정책과 임원 보수의 적정성, 경영진의 횡령·배임 등 법률 위반, 그 밖에 환경(E)ㆍ사회책임(S)ㆍ지배구조(G)와 관련해 기업가치가 훼손된 경우 등을 적발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 거대 자산운용사인 스테이트스트리트·블랙록도 ESG를 강조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착한 기업에 투자한다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고 수익률이 하락하는 성과부진 상황에서 투자자들에게 이른바 ‘보람’이라도 주겠다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이들을 따라 하겠다는 것인데 상당히 왜곡됐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이라고 해서 주로 총수 일가의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에 대한 지적이 많다.



△맞다. 국민연금은 각종 위원회의 지배를 받는다. 특히 기금운용위 위원은 각종 이해관계단체에서 추천을 받는데 추천위원 총 20명 중 겨우 3명이 기업을 대표해 대한상의와 경총 등이 추천한다. 국민연금기금의 수입은 연금보험료 수입을 나타내는 사회보장기여금과 운용수익, 기타, 국고지원으로 구성된다. 2018년 국민연금 총수입은 61조7,600억원이었고 이 가운데 사회보장기여금이 44조3,700억원이다. 이의 86%인 38조2,400억원을 사업장 가입자가 법률로 강제 징수당하는데 사업장 가입자분의 반을 기업이 부담한다. 적어도 43%의 발언권이 보장돼야 하는데 지금 기업의 목소리는 20분의3에 불과하다.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기금운용위원회 대부분이 시민·노동자·소비자단체, 연구기관 등의 추천인사로 채워지지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의 조합원 수는 노조 가입이 가능한 노동자 수 대비 11.8%에 그친다. 이들에게 전체 근로자를 대변하는 대표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는 법률을 개정해 해결해야 하는데, 보건복지부가 정부 안을 내든지 국회의원이 개정안을 내야 한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은 정부 관료를 직접 임명하지 않는다. 특히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이사 12명 전원이 ‘민간 경제·금융전문가’로만 구성돼 있다.

-중기부가 추진 중인 상생협력법이 ‘상호공멸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생협력법 개정은 중기부가 추진하고 있는데 내용이 아주 고약하다. 위탁 대기업이 수탁 중소기업과 한번 거래를 튼 후 거래관계를 해소하고 거래 대상 물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타사 제품을 사용하게 되면 이전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한번 맺은 계약은 수탁 중소기업이 놓아주지 않으면 계약기간이 끝나도 해제할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근대 사법의 기본이념인 ‘계약자유의 원칙’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특히 혁신 중소기업의 시장 진입이 원천 봉쇄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을 경직되게 만드는 독소 규제이며 상생협력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무고한 처벌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 결국은 시장경제를 망치게 되고 기업의 해외 탈출을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

-과도한 기업 상속세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13일자에 한국의 가족기업이 문명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의 상속세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사업해서 큰 기업을 일군 다음에는 국가에 강제 헌납해야 하는 꼴이다. 이는 무언가를 후손에게 남기려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 재산을 취득할 때 이미 세금을 납부했는데 그걸 누구에게 선물로 준다고 해서 다시 세금을 내라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이다. 기업 경영권을 상속하는 경우 세율이 최고 65%로 주식을 다 팔아도 부족할 수 있다. 국내 주요 기업가 대부분이 상속세 때문에 범법자가 될 처지인데 반문명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상속세가 없는 국가가 19개국이나 된다. 상속증여세 폐지가 시급한데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하는 국민 정서가 문제다. 당장 힘들다면 장기적으로 반드시 개편돼야 한다.

-정부의 기업정책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기업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 매우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285개 경제 법령에 2,657개 처벌규정이 있고 그중 83%(2,205개)는 사업자까지 함께 처벌하도록 돼 있다. 기업들이 무슨 특별히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제발 가만히 둬달라는 것이다. 근로시간 줄이고 최저임금 인상하고 안전기준 상향하고 배당 강요하고 경영자 겁박하고 툭하면 감옥에 보내는 것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3류(정치)가 1류(기업)를 가르치려 들지 말아 달라는 것뿐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

1951년에 태어나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에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독일 마르부르크대에서도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법대 교수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법무부 상사법특별위원장과 회사법개정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기업법학회장·한국상사법학회장·한국항공우주정책법학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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