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병원에서는 일반 세균과 변종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진단 장비가 없어 일반 독감인지 신종 바이러스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발생했어도 실제로 확진 판정을 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 2015년 청진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의사 출신 탈북자 최정훈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확인할 검사 키트가 북한에 없어서 전염병이 사라질 때까지 환자 발생이 없다고 발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3년 사스 발생 당시에도 북한은 사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단지 심한 감기·독감 환자가 발생했을 뿐이다. 북한으로 유입된 전염병을 확진하지 못하는 가칭 ‘주체의학’이 빚어낸 아이러니다. 북한은 계속 발생환자 0의 통계를 유지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 지역에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가 발생해도 북한 당국이 이를 숨길 수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의성을 가지고 은폐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감염 의심 환자로부터 바이러스를 채취해도 어떤 균인지 확실한 확진 판정이 쉽지 않다.
2003년 사스 당시 남의 일처럼 객관적인 보도에 그치던 상황과 달리 2020년에는 북한도 연일 비상경고등을 켜고 있다. 북한은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고 중앙과 도·시·군 비상방역지휘부가 대책에 나서고 있다.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하고 지구재진입(re-entry) 기술의 두 차례 성공으로 미국 서부지역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수 있는 군사 과학기술 강국인 북한이 왜 의료 체계는 최빈국 수준인가. 사회주의 체제의 형식적인 무상의료시스템과 북한의 의학과 인명 경시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국방예산에 비해 의료시설에 투자하는 예산은 조족지혈 수준이다. 화학약품 원료로 생산되는 치료약과 장비가 필수적인 치료의학보다는 사전에 감염을 막는 부실한 예방의학 중시도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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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은 북한이 약품 지원을 요청할 경우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나 북한의 공식 요청은 없다. 북측은 남측의 지원을 절대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남한과 체제경쟁을 하는 북한 입장에서 남한 약품을 받았다는 소문이 날 경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권력층에 치명적인 타격일 것이다. 지난해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으로 평안북도 돼지가 초토화됐지만 북한은 남한에 방역 약제를 요청하지 않았다. 바이러스 진단장비인 RT-PCR 장비는 유엔 안보리가 지정한 대북 금수물자다. 하지만 인도적 치료 목적이라면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평양의 권부는 인민을 살리지 못하는 주체의학의 맹목적인 고수보다는 최소한의 남측 지원을 수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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