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의도는 간단합니다. 요즘 프로그램들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했어요. 방송환경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TV만 보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나영석 PD가 지난달 10일 첫선을 보인 tvN 예능 프로그램 ‘금요일금요일밤에(이하 금금밤)’ 제작발표회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금금밤’은 15분짜리 6개의 숏폼(short-form) 프로그램을 한 프로그램에 담았다. 이승기의 일일 공장체험을 다룬 ‘체험 삶의 공장’, 뉴욕대를 졸업한 이서진의 뉴욕 여행기 ‘이서진의 뉴욕뉴욕’ 등이 한 프로그램 안에서 90분간 펼쳐진다. 나 PD는 “유튜브 클립이 하나를 보면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금금밤’도 각자 한 코너를 보고 다른 코너로 넘어가는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바야흐로 ‘짧아야 통하는’ 숏폼 콘텐츠 시대다. 나 PD는 앞서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에 간 세끼’(아간세)와 ‘라끼남’ 등 숏폼 콘텐츠를 안방극장에 먼저 선보였다. 그는 5분~6분 분량의 ‘아간세’와 ‘라끼남’을 통해 TV에서도 숏폼 콘텐츠가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고, 긴 버전을 보길 원하는 시청자들이 유튜브 등으로 유입되는 것을 확인했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잇따라 제작하며 ‘스타 PD’로 자리매김 한 나 PD가 본격적으로 TV에서 숏폼 종합 프로그램을 선보인 것이 증명하듯, 디지털에서 떠오른 숏폼 콘텐츠들이 안방극장까지 점점 외연을 넓히며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숏폼 콘텐츠는 모바일 시청에 더욱 적합한 짧은 길이, 빠른 화면 전환 등을 특징으로 한다. 스마트폰을 통한 콘텐츠 소비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에 특화된 콘텐츠가 다양해졌고,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10~20대인 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MBC 출신의 예능 PD들을 영입한 카카오M도 20분 이내의 숏폼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TV에서 먼저 선보인 콘텐츠를 모바일이나 웹에 맞게 전환했다면 이제는 숏폼으로 먼저 기획하거나 숏폼 콘텐츠에 중점을 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10~20대의 연애와 일상을 주로 다룬 짧은 길이의 웹드라마가 TV에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해 MBC는 웹드라마 ‘연애미수’를 방영했고, 엠넷에서는 인기 웹드라마 ‘에이틴’ 전 시즌을 특별편성하기도 했다. 플레이리스트와 MBC가 공동 제작해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엑스엑스(XX)’ 는 웹드라마 형식으로, 분량은 30분 내외로 기존 드라마보다 짧으며 네이버 브이 라이브(V LIVE) 등을 통해 먼저 공개된다.
대세가 된 숏폼 콘텐츠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오는 4월 출범하는 ‘퀴비’는 디즈니와 유니버설, 알리바바가 투자하고 드림웍스 창업자 제프리 카젠버그와 멕 휘트먼 HPE 전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했다. 퀴비는 한 에피소드당 10분 이내의 고품질 동영상을 선보이는데, 서비스 시작 첫해 자체제작 오리지널 콘텐츠 175개를 공개할 계획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리즈 위더스푼, 잭 에프론 등 유명 감독·배우들이 다양한 장르의 퀴비 오리지널 콘텐츠에 등장한다. 이 밖에도 15초짜리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은 최근 동남아시아의 넷플릭스라 불리는 아이플릭스와 손잡고 숏폼 콘텐츠 확대에 나섰다.
다만 단순히 긴 방송을 줄이거나, 기존 방송 콘셉트를 가져오는 것이 숏폼 콘텐츠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금금밤’의 경우 새로운 시도는 좋았지만 기존 예능과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을 받으며 ‘흥행 보증수표’ 나 PD의 프로그램답지 않은 2%대 낮은 시청률을 이어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인도 같고 아이템도 비슷한데 짧게만 한다고 호응이 좋을 거라는 생각은 망상”이라며 “재미도 신선함도 없고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든 숏폼은 기존 방송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숏폼은 디지털을 통한 소통 등 상호성이 유리하다는 점에 주목받은 만큼 이 측면을 살려야 한다”며 “웹드라마 역시 즐기는 층에 맞는 특화된 소재와 형식,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적절한 카메라 클로즈업과 감정 효과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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