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겨울 바다에는 담백한 멋이 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몸을 담글 수 없어도 홀로 겨울 바다를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 영흥도는 배를 타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행정구역은 인천으로 분류돼 있지만 차로 가려면 경기도 안산에서 두 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해안가마다 펄·모래·자갈 등 토질이 달라 다채로운 겨울 바다를 감상하기에도 제격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소사나무 최대의 군락지를 보기 위해 영흥도를 찾았다.
옹진군 선재도에서 영흥대교를 지나면 영흥도에 도착한다. 영흥도는 옹진군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은 서울 종로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겪어왔다. 삼국시대 백제 소유였던 섬은 한강 쟁탈전 속에 고구려·신라로 소유권이 수시로 바뀌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대부도와 함께 부천군으로 편입됐다. 해방 이후 주민투표를 통해 인천시로 소속이 정착됐지만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활용돼 이를 발견한 북한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한때나마 북한 영토로 넘어가기도 했다. 지난 2001년 경인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화력발전소가 영흥도에 건설되고 이를 위해 영흥대교가 놓이며 섬은 뒤늦게 관광지로서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무수한 변화 속에 130여년간 묵묵히 영흥도에서 행락객을 맞는 것은 섬을 지켜온 나무들, 바로 십리포해수욕장 인근에 조성된 소사나무 숲이다. 섬은 바다에 홀로 떠 있기에 겨울철 시베리아 북단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막아줄 지형이 없다. 섬 북쪽에 위치한 십리포해수욕장은 겨울철이면 매서운 바람이 그대로 옷깃 사이를 파고드는 곳이다. 영흥도에 자리를 잡은 섬사람들은 기지를 발휘해 바닷가 주변에 소사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덕분에 영흥도에는 한반도 최대 소사나무 군락지가 탄생했다.
영흥도 소사나무는 구불구불한 줄기가 특징이다. 방풍림은 거센 해풍에 해안가 반대 방향으로 휘기 마련인데 소사나무 특유의 억척같은 힘으로 줄기를 사방으로 뻗어낸다. 생김새가 고르지 못해 주로 땔감 용도로 쓰였지만 특유의 뒤틀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분재용으로 각광받았다. 군락지에 서서 이파리를 털어낸 채 가지를 뽐내는 소사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자니 칼날 같은 겨울바람도 한풀 잠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철에는 피서를 즐기러 온 여행객들에게 그늘막을 제공해 나무 아래 텐트를 치고 휴식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접근성이 좋고 어족이 풍부한 영흥도는 바다낚시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양로봉 갯바위, 비석바위, 농어바위 등 이미 알려진 낚시 명소에는 사계절 물고기를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갯바위 낚시를 즐기려 한다면 밀물과 썰물 시간에 주의해야 바위에 고립되는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이다. 지난해에는 1986년부터 지방어항으로 기능해온 진두항이 국가어항으로 승격됐다고 하는 희소식도 있었다. 해양수산부는 진두항에 약 480억원을 투입해 항만시설을 개선하고 낚시레저 전용부두, 친수시설, 주차장 등을 조성해 관광객들의 편의를 도모할 계획이다.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영흥도를 둘러보았다면 마지막 코스로는 수산물 직판장에 들러보자. 그냥 떠나기 아쉬운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듯 섬의 유일한 출입구인 영흥대교 옆에 위치한 수산물 직판장은 싱싱한 활어회와 매운탕을 맛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영흥도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곳이다. 물론 대부도 혹은 내륙과 비교하면 한적한 편이니 느긋하게 제철 생선을 구경할 수 있다. 호객행위는 있지만 불편함을 줄 정도로 거세기보다는 직판시장만의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다.
/글·사진(인천)=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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