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 내 수사와 기소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예시로 든 ‘엘시티(LCT) 1심 무죄’는 검찰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본건 수사를 마무리 지은 뒤 시민단체의 고발이 들어와 조용히 추가 수사한 사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검찰의 본건 수사에서 기소한 엘씨티 실소유자 이영복 회장 등 주요 피고인들은 지난 2018년 줄줄이 실형이 확정됐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추 장관은 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을 밝히면서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단지 건설 사업인 엘시티 비리 사건 관련 판결을 언급했다. 추 장관은 “강제처분까지 해서 기소했는데 무죄라고 하는 (것은 문제인데), 엊그저께도 무죄가 있었죠. 무슨 이런 현안 사건(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아니고도. 부산 엘시티 사건. 굉장히 국민적 관심이 있었고 지역 사회를 떠들썩했지만 1심 무죄였죠.”라고 했다. 이어 “ 그런 것이 리뷰(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우리가 다 절감하는 것이죠. 사건 관계인 입장에선 강제처분 당하고 수사 당하고 기소 당하고 하면 거의 풍비박산되잖아요. 그런 국민 중심으로 우리가 생각할 때다 하는 거죠.”고 했다.
즉 검찰이 엘시티에 대해 떠들석하게 수사했으나 1심에서 무죄가 난 것은 문제라는 취지로 언급하며 이같은 기소를 걸러내기 위해 수사-기소 분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1심 무죄가 난 건은 검찰이 2017년 초까지 집중 수사한 본건이 아니라 이후 추가로 들어온 고발 사건을 수사해 2019년 2월 기소한 것이다. 따라서 추 장관이 주장한 맥락에는 맞지 않는 예시란 지적이 나온다.
본건 수사의 경우 부산지검 특별수사부(임관혁 부장검사)가 지난 2017년 3월 12명 구속기소 등 총 24명을 기소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마무리지었다. 당시 윤대진 현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부산지검 2차장, 임관혁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장이 부산지검 특수부장이자 주임검사로 수사를 이끌었다. 이 회장은 엘시티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허위 용역계약 체결 등으로 대출금·신탁자금을 가로채고 회사자금을 횡령하는 등 705억여원을 빼돌리고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5억3,000여만원의 금품 로비를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또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배덕광 전 자유한국당 의원, 허남식 전 부산시장은 이 회장 등에게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이 사건의 주요 피고인들은 2018년 줄줄이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회장의 경우 2018년8월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앞서 2심은 “엘시티사업을 진행하면서 거액의 대출금, 신탁자금을 편취하고 관계회사의 자금도 거액을 횡령했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앞서 현 전 수석은 징역 3년6개월과 벌금 2,000만원, 추징금 3억7,300여만원, 배 전 의원은 징역 5년에 벌금 1억원, 추징금 9,100만원이 확정됐다. 다만 허 전 시장은 무죄를 확정 받았다. 법원은 허 전 시장의 고교 동창이자 선거캠프 참모였던 측근의 허위 진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검찰이 본건 수사 이후 새로이 고발된 사건을 수사해 지난해 초 재판에 넘긴 것이다. 지난 2017년 5월 부산은행의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의혹 등에 대한 부산참여연대와 국세청 등의 고발이 단초였다. 당시 한 시민단체는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며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수차례 요구하기도 했었다.
다만 2017년 말 고발인 조사 이후엔 이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바깥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다 2019년 2월 부산지검 특수부(박승대 부장검사)는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이 전 회장 등 6명을 전격 기소했다. 이 회장과 박모 전 청안건설 대표는 2015년 12월 엘시티 사업 필수사업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령법인 A사를 설립해 부산은행으로부터 300억원을 대출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를 받았다. 또 성 전 회장 등 부산은행 관계자 4명은 A사가 엘시티의 우회 대출을 위한 유령법인임을 알고도 신용불량자인 이 씨가 보증 담보를 서게 하는 등 부실심사로 대출해 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회장과 박 전 대표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엘시티 시행사나 관계사 자금을 가로채거나 횡령하는 과정에서 허위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730억원대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받은 혐의로도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달 열린 결심공판에서 성 전 회장에게 징역 5년, 이 회장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지난 5일 부산지법 형사5부(권기철 부장판사)는 300억원 대출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추가 대출이 규정을 위반해 졸속으로 진행되는 등 부당하게 이뤄졌지만, 회수 가능성이 없거나 대출로 인해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배임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 전 회장 등 2명의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 혐의는 선고가 오는 18일로 연기돼 아직 1심 선고가 나지 않은 상태다.
법무부 관계자는 “무죄 기사가 난 것을 보시고 말한 것”이라며 “엘시티 사건이 워낙 요란하게 진행됐었기에 (언급하신 것 같고) 디테일을 고려해서 말씀하신 건 아닐 것”이라고 했다.
한편 추 장관은 지난 2016년11월 엘시티 비리에 여권 인사들이 연루됐다며 실명을 거론한 적이 있다. 당시 부산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국민주권운동 부산 출정식’에서 추 장관은 “지금 부산을 뒤덮고 있는 엘시티 비리도 결국 최순실까지 연결된 친박(친박근혜) 정권 차원의 비리”라며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현기환 전 정무수석과 서병수, 허남식 전·현 부산시장은 물론 정·관계 인사들, 사정기관까지 줄줄이 엮인 정권비리의 종합판”이라고 했다. 다만 이들의 비리 연루와 관련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진 않았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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