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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생각·사랑·기억은 '한통속'이다

■사랑,죽음,그리고 미학- 영원한 사랑의 아바타

김동규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김소월의 詩 '못 잊어' 처럼

'생각'은 곧 '사랑한다'는 의미

잊지 못하는 아픔까지 감수

인간은 애증에 빠져드는 존재

고통 통해서만 이해하고 기억

김소월 초상./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빠가 다섯 살 아들과 격렬한 힘겨루기를 한다. 최신 육아 책에 보면 힘과 몸을 쓰는 놀이는 아빠의 몫이란다. 얼마 후 아들의 감성이 거칠어질까 걱정도 되고 언어는 시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라 아빠는 놀이를 바꾼다. 아이에게 소월의 시를 외게 한다. 장난삼아 재미삼아 시를 외다 보면 그것도 흥미로운 놀이가 된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김소월 ‘못 잊어’ 중) 당연히 아이는 뜻까지 새기지 못한다. 아빠도 당장 그것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시에 배인 감성을 낭송하는 목소리에 담아 어설프게나마 모방하게 할 뿐이다.

이렇게 한참을 놀고 있는데 아홉 살 딸이 끼어든다. 질투 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빠, 나도 옛날에 가르쳐줬던 시 외고 있어.” 의기양양하게 과거에 외웠던 시를 암송한다. 몇 년 전 아빠는 딸과 똑같은 놀이를 했다. 뜻밖에 딸은 그 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외운 걸 종이에 써 보라고 했더니 삐뚤빼뚤하기는 했지만 오탈자 없이 잘 썼다. 기특해서 벽에 붙여 놓고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 딸에게 가르쳐줬던 시는 정현종 시인의 ‘좋아하는 것도 한이 없고’다. 이 아이들이 시를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어떤 고통이 그들의 몸을 할퀴고 지나가야 할까. 나이 든 사람은 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너무 뿌리가 깊어 오직 고통을 통해서만 이해하고 온전히 기억한다는 걸.

공덕초등학교 김지은양이 쓴 정현종 시인의 ‘좋아하는 것도 한이 없고’.


소월의 시에서 망각을 불가능하게 만든 요인은 대체 무엇일까. 소월은 ‘사랑’이라고 보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그립기만 한데 어떻게 ‘생각’이 안 날 수 있느냐며 반문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여기에서 생각은 기억을 뜻한다. 생각의 요체는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사병(相思病)’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의 어법이 보여주는 대로 생각은 사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생각·사랑·기억은 이렇게 한통속이다.

못 잊는다는 것은 이별의 고통이 지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누군들 계속되는 고통을 바라겠는가. 누구나 상실의 상처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정현종 시인의 말마따나 인간은 호오와 애증에 한없이 빠져드는 존재다. 이처럼 어리석기만 한 인간은 역설적으로 무한에 참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한없는 것에 매여 있는 무한의 한 마디다. 유한하지만 간접적으로 무한과 접속돼 있다. 단 무한과 직접 대면하면 유한의 얇은 막은 산산이 파열된다. 신화와 종교는 신을 본 인간(예컨대 세멜레)이 파멸되는 숱한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한없는 것을 추구하다 보면 삶은 무한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한을 추구할 수는 있다. 문제는 (무한을 탐한 대가인) 파멸을 회피하려는 욕망이다. 시인은 그것을 ‘도둑놈의 심보’라고 말한다. 끝까지 못 잊는 자는 고통에 잠식돼 종국에는 파멸할 것이다. 그런데 소월의 시적 화자는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못 잊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쌀 한 톨에서 우주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하나의 개체가 세계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에 따르면 산소를 싫어하는 박테리아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거 지구 대기에 산소가 없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DNA로 대표되는 생명 자체가 일종의 기억이라는 말이다. 우주 변화에 적응하고 자연 선택된 생명체는 그 자체로 우주의 역사를 저장한 메모리이다. 이런 것을 두고 철학자 박동환은 ‘x의 존재론’에서 ‘영원의 기억’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비롯한 개체들은 그런 기억의 아바타이다. 이 점에서도 못 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마음이 복잡하고 괴로울 뿐이다.

그룹 ‘송골매 1집(1979)’에 실린 노래 ‘세상만사’ 가사에는 소월 풍의 ‘그런대로’가 잘 표현돼 있다.


소월은 못 잊어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과장하거나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못 잊으면 못 잊는 대로, 그래서 아프면 좀 아픈 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을 시인은 ‘그런대로’라고 표현한다. 정말이지 이상야릇한 말이다. 통상 이 단어는 만족할 수 없으나 그럭저럭, 그리 ‘있는 그대로’를 뜻한다. 하지만 이 말은 시 속에서 사랑(생명)이 낳은 고통, 즉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삶의 액면 그대로를 가리킨다. 전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는 버려두고 생의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시인은 이 말을 사용한다. 영원한 사랑의 아바타가 가진 기억이기에 그런 고통쯤은 온당히, 그리고 넉넉히 감내하겠다는 태도가 바로 ‘그런대로’에 담겨 있다.

김동규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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