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장애인 체육선수 10명 가운데 1명꼴로 성희롱·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 절반가량은 피해를 겪은 시기가 미성년자 때인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당시 피해 사실을 알았지만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 등의 이유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별조사단은 13일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청사에서 ‘장애인 체육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정책간담회’를 열고 장애인 체육선수들을 대상으로 벌인 인권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10월 한달 간 장애인 체육선수 1,554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장애인 체육선수들의 학습권, 접근권, 재생산권, 피 성폭행 여부 등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이뤄졌다. 특별조사단은 지난해 2월 빙상 조재범 코치의 선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출범해 범정부 차원에서 스포츠계 성폭력·폭력 실태 등을 조사해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9.2%가 언어적·육체적·시각적 성폭력 등 가운데 1가지 이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피해 사례의 46.8%가 성인 이전 시기여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악습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는 동료·후배 선수(40.6%)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선배 선수, 감독·코치가 그 뒤를 이었다. 다만 언어적 성희롱은 주로 선배 선수에 의한 비중이 높았고 육체적 성희롱 가해자에는 감독·코치의 비중이 높은 경향성이 드러났다. 피해장소는 훈련장(41.3%)의 경우가 가장 많았고 그 뒤를 경기장(28.0%), 회식자리(18.2%), 합숙소(14.7%) 등 순으로 뒤따랐다. 응답자 중 피해자 비율은 여성(13.8%)이 남성(7.8%)보다 높았다.
피해자 과반수가 피해 당시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피해자의 39.4%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를 이유로 들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24.2%), ‘그 당시에는 성폭력인지 몰라서’(18.2%) 등의 이유가 뒤이었다.
외부기관에 피해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들 가운데 67.3%가 2차 피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2차 피해 경로도 다양했다. 피해 선수들은 내외부 기관이나 지도자·동료선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 가해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꾸며 피해 상황을 왜곡한 경우, 동료·지도자들이 허락 없이 피해를 알린 경우 등으로 2차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자들은 털어놨다.
지난해 장애인체육회는 온라인으로 선수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전체 응답자 가운데 교육을 이수했다고 답한 비중은 48.6%로 절반이 채 안됐다. 장애인 선수의 경우 선수등록 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활동보조인 등이 도와주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이 교육을 대신 이수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심층면접 결과 분석됐다.
특별조사단은 장애인 체육계에 만연한 위계구조가 성폭력 피해 신고를 어렵게 한다고 보고 체육계의 위계구조와 상명하복의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전문적인 논의와 대응책을 위해 지역 내 성폭력피해지원기관이나 젠더폭력·법률 전문가 등과도 협력을 강화해 피해 선수의 상황에 맞는 서비스 연계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장애인 체육계 구성원들의 성 인지·장애 감수성을 위해 관련 교육을 내실화도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절반 이하의 이수율을 보이는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의 경우 대리인에 의해 이뤄지는 현실 등을 고려해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대리인에 의한 선수등록 금지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선수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에 대한 장애 감수성 및 인권 감수성 강화를 위해 이들에 대한 장애 감수성 및 인권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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