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이후로 인쇄된 책을 묵독하는 것이 보편적인 독서법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책의 형태는 소리(구전), 두루마리 형태 등으로 변화해왔습니다. 시대가 변한만큼 책도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작 장편소설 ‘작별 인사‘로 돌아온 김영하 작가는 20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종이책을 출간한 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 김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작별 인사’는 지난 15일 전자책 플랫폼 업체 밀리의서재를 통해 선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전자책 정기구독 회원에게 별도 제작된 종이책을 공개한 뒤 오프라인 서점에는 3개월 뒤 유통하는 방식이다.
‘작별인사’는 통일된 한국의 평양을 무대로, 자신을 인간으로 알고 있던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인 소년이 납치되면서 펼쳐지는 모험과 성장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장편소설이지만 분량이 많지 않고 장르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회원제 서비스를 통한 출간이 기존 독자들의 접근을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학창시절 부모님이 신발을 사주시면 헤질 때까지 그 신발만 신었지만 지금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신발을 신는다. 책을 읽는 방식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종이책을 가장 좋아하지만 짬이 나거나 들고 다니기 불편할 때 전자책을 써보니 매우 유용했다”며 “좋은 이야기는 전자책이나 종이책이나 독자들에게 선택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쓸 수 있는 최선의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스타성 있는 기성작가의 새로운 시도에 출판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그는 “출판계에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이 아니라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며 “종이책을 산다는 것은 그것을 보관할 장소에 대한 비용도 함께 지불하는 것이다. 고시원, 옥탑방을 전전하는 젊은 세대가 어떻게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젊은 세대가 종이책의 물성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김 작가는 자신이 독립 출판 브랜드를 설립해 운영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아내가 출판사를 차렸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내의 오랜 꿈이었지만 남편이 작가여서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며 “제가 과거에 쓴 책이나 해외 작가의 절판된 책 위주로 출간할 계획이다. 다만 ‘작별 인사’가 아내의 출판사에서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불거진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작가는 “동료 작가들의 투쟁을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 창작자, 예술가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과 자기희생, 특히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은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이런 문제는 문학계 뿐만 아니라 지위가 불안하고 약한 예술계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국회에 계류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하루 빨리 통과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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