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걷어주시면 열을 재겠습니다.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의 정문에 기자가 들어서자 한 안내원이 체온을 확인한 뒤 손 소독제를 바르도록 안내했다. 교회가 가장 붐비는 주일 이른 오후인데도 예배에 참석한 교인은 평소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남성의 한 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어르신들과 유아를 동반한 가족은 온라인 예배를 드리라고 안내하고 있다”며 “교회 내 식당도 당분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날 정세균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종교행사 등 좁은 실내 공간에 모이는 자리나 야외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밀집하는 행사는 당분간 자제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힌 가운데 코로나19 공포에 결혼식이나 쇼핑 등 일상생활은 물론 종교활동마저 얼어붙고 있다. 교회와 성당들은 예배와 미사를 온라인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시설을 폐쇄하고 있다. 미사에 참석하더라도 성가 합창이나 ‘아멘’을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성당도 나오는 실정이다. 일부 사찰들도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고 있고 법회 행사를 잇따라 취소하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도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성수와 성가책이 없는 미사를 진행했다. 개인 성가책을 가져오고, 미사 후 사제와 인사를 하며 악수를 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안내문도 붙었다. 주일 평소에는 꽉 들어차는 성당 미사는 한산했다. 6번 확진자와 83번 확진자가 방문했던 종로구 명륜교회는 건물 출입구가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의 불안감은 더 크다. 이날 신천지 본부교회와 이웃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과천 별양동성당은 열감지카메라와 손 소독제는 물론 출입자 명부를 비치하고 미사 참석자를 일일이 확인했다. 네 차례로 나눠 치르는 주일 미사를 두 차례로 줄였음에도 이날 11시 미사 참석자는 평소의 5분의1 수준인 50명 안팎에 불과했다. 참석자는 대부분 50~60대 중장년층이었다.
확진자 거주지인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7개 성당과 증평군의 2개 성당은 23일 일요 미사를 열지 않았다. 청주 지역 사찰들도 오는 24일로 예정된 ‘초하루 법회’에 신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참여하도록 했다.
확진자 2명이 잇따라 발생한 부산 해운대구도 지역 내 교회와 성당이 일요예배를 취소하거나 신도 참석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 최대 규모 교회인 수영로 교회와 동부산교회는 이날부터 교회 잠정 폐쇄를 결정했다. 천주교 부산 해운대성당은 초등학생과 어르신들의 미사 참여를 자제해달라는 안내문을 돌리는 한편 미사 때 성가를 부르거나 ‘아멘’을 말하는 것을 금지했다. 아예 미사 중단조치에 들어간 천주교 교구도 전국적으로 4곳에 이른다. 광주대교구는 3월5일까지 지역 내 미사와 모든 모임을 중단하기로 했다. 전면적인 미사 중단은 1937년 교구 창설 이래 83년 만에 처음이다. 또 대구대교구·안동교구·수원교구 등도 교구 내 미사와 모든 단체 모임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전북 지역 주요 교회들도 이날 예배 일정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시설을 통제했다. 전주 전동성당과 중앙성당은 미사는 예정대로 진행하되 성가 합창과 고해소 이용 등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성당 내부도 미사 시간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신도들은 출입을 제한했다.
결혼식·돌잔치 등 평생 한번 뿐인 경사도 반쪽짜리에 그치고 있다. 경기 화성시 동탄에 거주하는 양모(35)씨는 지난주 말 가족과 지인들을 초청해 딸아이의 돌잔치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가족모임으로 축소했다. 양씨는 “기념품도 준비하고 오랜만에 친구와 선후배들을 만날 생각에 들떴는데 모임을 꺼리는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경남 창원으로 지난 설 귀국한 박모(28)씨는 결혼식을 대폭 축소하고 신혼여행도 다음으로 미뤘다. 박씨는 “남부럽지 않은 결혼식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지만 친척과 친한 지인을 제외하고는 청첩장도 못 돌렸다”고 토로했다. 이날 박씨의 결혼식이 열린 호텔 입구에는 호텔 직원들이 발열 검사를 실시했고 대부분의 하객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타났다.
/손구민·허진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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