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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336년 필레나이의 비극

사상 최대규모 집단자살

필레나이 요새를 지키는 리투아니아인들./위키피디아




1336년 2월25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군사 요새 필레나이. 여명이 걷히며 공격에 나선 튜턴 기사단은 놀라며 목책을 넘었다. 한 달여 동안 끈질지게 버티던 리투아니아인들이 보이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던 이유는 곧 밝혀졌다. 모두가 죽었기 때문이다. 생존자는 단 한 사람. 피를 뒤집어쓴 제사장이 침략자들을 노려봤다. 기사들이 접근하자 나이 든 제사장은 도끼로 자신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제야 기사들은 밤새 감돌았던 스산한 기운과 불길의 정체를 알아챘다.

예상하지 않았던 한겨울의 기습공격을 받고 4개 마을에서 필레나이로 피신했던 리투아니아인 4,000여명이 항복보다 죽음을 택했다. 아이를 불길을 던진 아내는 남편의 손에 죽고, 지휘관은 전사들을 목을 자른 뒤 제사장에게 몸을 내놓았다. 승자들은 건질 것도 하나 없었다. 식량·무기 등 적이 쓸 만한 물건은 모두 타고 가축들도 죽었으니까. 인류 역사상 항복을 거부하고 자살을 택한 경우는 이스라엘군의 정신적 요람인 마사다 요새(73년·960명 자결)를 비롯해 무수히 많지만 필레나이처럼 많은 인원이 일시에 목숨을 끊은 적은 없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자살이 일어난 이유는 종교를 내세운 세력 경쟁. 예루살렘 성지 탈환이라는 목표가 사실상 사라진 3차 십자군 이후 기독교 국가들은 동쪽과 북쪽으로 눈을 돌렸다.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이민족들을 점령하고 개종시킨다는 북방십자군 운동의 주력은 튜턴 기사단. 예루살렘과 소아시아에서 근거지를 상실한 그들은 뿌리내릴 지역으로 이교도들의 땅을 찾았다. 필레나이 요새 공방전도 약 50년 전부터 시작된 종교전쟁의 일부였다.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택했던 리투아니아인들의 저항정신 앞에 튜턴 기사단은 15세기 초 패하고 말았다.

리투아니아는 이후 폴란드와 동군연합을 이루며 중부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튜턴 기사단은 기독교도가 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에 충성을 맹세하며 땅을 받아 프로이센공국으로 거듭났다. 공작령으로 출발한 프로이센은 병합과 발전을 거듭하며 독일 통일(1870년)까지 이끌었다. 리투아니아는 작은 나라로 쪼그라들었지만 자긍심만은 강하다. 리투아니아의 쇠퇴 원인은 우리 역사와 비슷하다. 지도층의 분열과 부패를 막지 못한 탓이다. 2018년 선진국의 모임이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한 리투아니아는 오늘날 자살률에서 한국과 세계 1·2위를 다툰다. 정체성을 지키려다 죽어간 조상들이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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