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개발·원격근무 등 걸림돌 많아
법과 규정은 단순해야 위력 발휘해
유연하고 열린 사회로 내성 키워야
휴대폰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지난주 가족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오늘도 현지에서 위험을 무릅쓴 채 협력업체의 가동상황을 점검하고 부품 조달을 챙기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왜 중국에 진출해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치솟는 인건비에 경영여건 악화로 그나마 중국으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벌써 사업을 접었을 것이라는 항변이다. 오늘도 묵묵히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수많은 기업인의 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유치하겠다며 각종 인센티브를 내놓는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다. 당국에서는 기업의 고정비용 감축이나 생산성 제고 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턴 활성화를 위해 상생협력평가에서 별도의 가점을 주겠다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인력 채용부터 인허가절차까지 기업활동을 옥죄는 경영환경을 견디지 못해 국내에 들어왔다가 다시 해외로 빠져나간 사례가 주변에 적지 않다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얼마 전 직원을 공채로 뽑으려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사연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면접 과정에서 별생각 없이 가족관계를 물어본 것이 화근이었다. 면접생은 직무와 관련 없는 질문을 휴대폰으로 녹음했다며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그는 과태료 300만원을 내기 싫으면 협상하자는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로 150만원을 건네줘야 했다. 그는 달라진 제도를 몰랐던 책임이 크지만 취약한 인사시스템으로 버티는 열악한 중소기업의 현실과는 너무 괴리가 크다고 한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규제 공화국은 우리의 또 다른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마스크를 생산하는 기업은 작업량을 늘리기 위해 일일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한시가 급한 백신을 개발하는 데도 선진국과 달리 까다로운 임상규제에 막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남들은 다 하는 원격의료는 갖은 생색을 내면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 정부가 강제로 회식조차 못하도록 만들어놓고 뒤늦게 내수를 살리겠다며 회식을 권장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래놓고 한편에서는 의원급 병원에 감염관리 전담인력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혼란스러운 틈새를 타고 발 빠르게 규제부터 쏟아내는 정치권의 상술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해 자원봉사인력을 요청하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갖은 규제와 정책 실패로 부실해진 지방 의료시스템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규제와 법만 앞세울 게 아니라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기업마다 잇단 폐쇄에 애를 태우지만 재택근무나 원격근무 등은 번잡한 취업규칙과 기술적 걸림돌에 가로막혀 있다.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보다 유연한 근무형태를 늘려 미증유의 위기를 넘겨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가 아니라 근로자들이 일하는 장소와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유연하고 열린 조직과 사회일수록 변화무쌍한 외부 변화에도 내성을 갖추고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한나라 유방은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에 지친 백성들에게 오직 세 가지 법만 지키면 된다고 약속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도둑질한 자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세 가지 조목만 있으면 된다는 유방의 ‘약법삼장(約法三章)’이다. 법이란 단순할수록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자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통치자의 책무라는 뜻이다. 이는 20년도 못 버틴 진나라와 달리 유방의 한나라가 200년이나 지속한 비결이기도 하다. 한나라의 약법삼장이 이 시대 정치지도자들에게 던지는 의미를 되새길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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