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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곽신애,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역사를 뒤집는 것”

“흥행요? 손익분기점을 넘길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천만까지 돌파할 줄은 몰랐죠. 아카데미 수상이요? ‘기생충’이 받는다면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생각 했을 뿐이죠.”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제작사 대표 대상으로 라운드 인터뷰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말하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4관왕의 기운을 나눠가졌다.

‘기생충’의 시작은 10페이지 짜리 시놉시스 였다. 봉준호 감독이 2015년 겨울, 봉투에 담긴 시놉시스를 보고 바로 하겠다고 결정했다. 2015년 당시의 시놉시스에 담겨 있던 것은 빈부의 문제였고, 결말은 나와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는 기억이 곽 대표의 머릿 속에 남아있었다.





‘기생충’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국내 개봉해 5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어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에 이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국제영화상·각본상까지 휩쓸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이번 아카데미의 최다 수상이며,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이 최초다. 또한 작품상과 국제장편영화상을 동시에 가져간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비영어권 영화의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은 역대 6번째이며,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다.

처음에는 그저 낯설었다는 곽 대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예매율이 치솟았다는 얘기를 듣고선 좋은 기운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후 천만에 대한 기대감 역시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안도했다. 천만 돌파 이후 “기본적인 숙제를 끝낸 느낌”이라 전했다.

‘기생충’은 막판까지 ‘1917’과 오스카상 경합을 벌였다. 수상을 예상했던 순간은 외신의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이렇게 좋아한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지에서 반응은 뜨거웠다. 가는 곳마다 봉 감독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몰린다. 봉 감독을 찾으려면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을 가면 됐을 정도다. 시상식 시즌의 톱스타이자 인기 넘버 원은 봉 감독이었다”고 말했다.

“ ‘기생충’ 팀 옆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다른 작품 소개할 때는 호응이 없다고, ‘기생충’ 소개할 때는 반응이 열광적이었죠. .미국배우조합상(SAG) 때 특히 그랬죠. ”

결국 아카데미는 ‘기생충’의 손을 들어줬다. 곽 대표는 “미국의 영화인들이 용기 있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 8000여명 회원들이 큰 결단을 내린 것 아닌가. 변화에 대해 두려울 수 있는데 그걸 선택했다는 것에 리스펙트한다. ”고 말했다.

한 기사에서 본 문구는 곽대표의 머릿 속에 인상적으로 남았다. ‘‘1917’의 작품상 수상은 오스카의 역사를 확증할 것이고 ‘기생충’이 받는다면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이다.

당시 수상소감에 대해 곽 대표는 “기분이 이상하다. 시상식 당시 우리에게 작품상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진짜 받으니 이상하다. 실제로 굉장히 무겁다. 대략 3.5kg 정도다. 너무 무거워서 시상식을 마치고 나서 누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며 리얼한 소감을 전하기도.

10개월에 걸친 오스카 레이스 동안, 곽 대표는 “그들이 우리 영화를 인정하고 좋아한다는 걸 진심으로 알게 됐다. 일종의 우정이 쌓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영화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이곳에도 많이 있구나 싶었다. 동질감을 느꼈고 대단한 것도 있었다“고 했다.







곽신애 대표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휩쓸며 영화인으로서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이했다. 아시아 여성 프로듀서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다.

‘오스카 노미니 런천’ 행사는 오스카 캠페인에 경험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곽 대표는 “아카데미에서 소중한 ‘챙김’을 받았다는 느낌을 안겼다”고 말했다. ‘클래식 포토’라는 순서에서 무작위로 한 명씩 불러나가서, 소개받고 함께한 모두에게 박수받는 자리였다. 그는 “내가 오스카의 노미네이트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곽 대표는 영화잡지 키노 기자로 활동하다가 제작사 청년필름, LJ필름의 기획마케팅실을 거쳐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남편은 ‘해피엔드’, ‘유열의 음악앨범’을 만든 정지우 감독. 곽 대표의 오빠는 곽경택 감독으로 영화인 집안으로 알려져있다.

영화계에 30년간 몸담은 곽 대표가 ‘기생충’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다. 늘 누구의 아내, 누구의 동생으로 불리던 기사에서 본인이 주어가 된 것.

”웃기다고 할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싶진 않는데 기사의 수식어가 절 이렇게 만들더라구요. 예전에는 곽경택 감독 동생, 정지우 아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면 칸 국제영화제 수상 이후 오빠와 남편이 연관검색어가 됐다니까요. 하하.“

곽대표의 제작자로의 꿈은 재미와 만듦새를 동시에 갖춘 작품을 제작하고 싶은 것. ‘기생충’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나?’라는 의문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곽 대표는 달라졌다.

“작년과 올해 아직은 조금 더 해도 되겠다. 스스로에 대해 어느 순간 내가 좋은 제작잔지 모르겠던 시기가 있었다. 참여하며 폐를 끼치지 않을까, 실력이 모자라서 아닐까, 작품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싶은 고민이 많았다. 이번 ‘기생충’에서는 무난하게 멤버로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기생충’ 팀이 저를 신뢰해준 덕에 용기낼 수 있었다.”

“단순히 잠깐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한다. 감정의 반향을 이끌어낼 수 있고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싫다. 영화 작업이란 게 정말 어렵다. 영화인 모두가 하는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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