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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24시] 북한의 '새로운 길' 한국의 '위험한 길'

김홍균 동아대 계약교수·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정은 도발 수위 높여 생존모색

김씨 왕조 ‘낡은 길’ 그대로 답습

韓, 北 개별관광 추진 등 유화정책

비핵화 압박하는 국제노력 역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중국 눈치보다 사태를 키운 정부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자국민과 세계인들을 죽음과 공포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최대 위기를 맞아 시험대에 올랐고 어설픈 대응으로 크루즈선을 질병 배양실로 만든 일본은 도쿄하계올림픽까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 새로운 전략무기의 출현을 위협하던 북한도 역병 발생 이후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호언할 때도 아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희망을 걸고 있었을 것이다. 하노이회담에서 고배를 마시고 와신상담 끝에 내놓은 4월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오면 3차 정상회담을 해볼 용의가 있다며 미련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입장을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12월31일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 철회와 머지않은 시일 내 충격적인 실제 행동을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은 지난 2018년 갑작스러운 평화 공세로 돌아서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최소한의 핵 능력을 양보하는 대가로 제재를 해제하고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남는 전략을 추구했다. 미국 현직 대통령과의 최초의 정상회담을 통해 일방적으로 유리한 싱가포르 합의를 성공시킬 때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의 절묘한 한 수가 먹히는 듯했다. 그러나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노이회담을 통해 북한의 속셈을 확인한 미국은 제재의 빗장을 굳게 걸었다. 북한에 남은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보인다. 과거 수십년 동안 김씨 왕조가 의지해온 ‘오래된 전략(old playbook)’, 즉 더 강도 높은 도발을 통해 위기를 조성하고 그 속에서 생존의 기회를 찾는 도박이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새로운 길’이란 다름 아닌 오래된 ‘낡은 길’인 것이다.

이렇게 북한이 나아가려는 길이 뻔히 보이는데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상황 인식은 놀랍도록 안이하다. 정부는 이 와중에도 남북관계를 풀어보겠다고 북한 개별관광 추진, 남북 철도도로연결사업 실현, 김 위원장 답방 여건 조성을 얘기하고 있다. 개별관광은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니 문제가 없고, 남북경제협력 추진을 위해 제재 예외 승인을 얻도록 노력해나간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이 미북협상과 북핵 문제 해결을 견인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논리를 내세운다.

북한은 제재로 고갈되고 있는 외화 수입을 늘리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쓰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지난해 석탄 불법수출로 3억7,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했다. 미국의 디지털 보안회사 ‘레코디드퓨처(Recorded Future)’는 2017년 이후 북한의 인터넷 사용이 300% 이상 급증했는데 암호화폐 탈취와 해킹기술 개발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관광을 통한 외화 획득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북한이 지난해 중국 관광객 35만명을 유치해 약 1억7,5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한국이 북한 개별관광을 추진하는 것은 제재 위반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제재를 통해 비핵화를 압박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앞장서야 할 우리가 오히려 이를 무력화시키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북한을 오랫동안 다뤄본 미국 전직 관리에게 어떻게 하면 남북관계가 개선될지 문의했더니 북한이 남측을 더 이상 ‘당연하게(take for granted)’ 여기지 않게 될 때라는 답이 돌아왔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19 암초에 부닥쳤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대선 동향을 지켜보며 전략도발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낡은 ‘새로운 길’을 택하는 그날 맹목적인 ‘북한 바라기’ 정부가 우리 국민을 ‘위험한 길’ 위에 세워놓는 비극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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