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더라도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의 나체를 촬영한 것은 성범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67)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2017년 4월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여성 A씨와 술을 마신 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어 A씨가 술에 취해 잠들자 휴대전화로 하반신 등 나체 사진 2장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동의를 받고 사진을 촬영했다고 주장했지만 A씨는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1심은 “사진을 촬영할 당시 피해자의 상태는 잠들었거나 잠들기 직전으로 보이며 술에 상당히 취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촬영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징역 6년에 집행유예 2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씨가 A씨와의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를 나누는 도중 촬영 사진을 자연스럽게 전송하고 A씨의 항의에도 숨기려 하지 않고 이씨가 ‘네가 동의했다’는 취지의 답장을 보냈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사진 촬영에 대한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동의를 한 것으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대법원은 “이씨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피해자는 술에 만취해 판단 능력이나 대처 능력을 잃은 상태에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이씨는 사진 촬영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