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패션계에 발을 디딘 지 6년이 채 안 된 디자이너를 표지모델로 내세웠다. 그가 처음 도전한 패션은 지퍼나 단추 없이 몸을 감싸는 랩드레스로, 잡지는 그를 “코코 샤넬 이후 가장 사랑받는 디자이너”라고까지 칭하면서 성공 스토리를 조명했다. 주인공은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DVF의 창립자다. 버락 오바마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와 수많은 셀럽이 가장 선호하는 드레스로 꼽는 바로 그 브랜드다.
1946년 유대계의 딸로 태어난 퍼스텐버그는 제네바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중 독일 왕족의 후예인 에곤 본 퍼스텐버그를 만난다. 대학 시절 옷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패션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며 3년 만에 이혼을 택했다. 이후 뉴욕으로 이주해 패션지 ‘보그’ 사무실에 랩드레스를 들고 가 호평을 받았으며 4년 만에 500만벌을 파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의 비약적 성장이 발목을 잡았다. 화장품 등에 브랜드를 남발하면서 특성을 잃어 10년 넘게 실패를 거듭했다. 그는 절치부심 끝에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새 디자인으로 DVF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었다.
1조3,000억원의 부호가 된 그는 2010년 또 하나의 꿈꿔온 일을 이룬다. 여성 문제에 힘쓴 인물을 대상으로 ‘DVF어워즈’라는 상을 제정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과 오프라 윈프리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올해는 대법관 임명 이후 27년 동안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판결로 진보진영의 아이콘인 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 대법관이 수상했는데 이를 두고 미 정가가 시끄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인도 방문 중 긴즈버그를 향해 “트럼프 행정부와 관련한 사건 심리에서 손을 떼라”고 한 것을 두고 행정부와 사법부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4년 전 자신을 향해 ‘사기꾼’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긴즈버그가 눈엣가시였는데, 그런 그가 상을 받는 것이 탐탁할 리 없을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이념 대결이 심해지고 있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한 인물까지 정치 논쟁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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