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을 횡령한 뒤 일부를 아내에게 보내 교육비와 생활비로 쓰도록 했다면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외국계 기업의 한국법인인 A사가 임원이었던 B씨의 아내를 상대로 제기한 사해행위에 따른 증여계약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사해행위는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줄여 채권자의 변제권을 침해하는 것을 뜻한다.
A사의 재무 담당 임원으로 근무했던 B씨는 회삿돈 1,317억원가량을 횡령한 뒤 지난 2017년 2월 해외로 도피했다. B씨는 회삿돈 횡령에 앞서 아내 명의의 계좌로 3,000만원을 보냈고 도피 전날에도 자신의 계좌에서 아내와 자녀 계좌로 8만7,000달러를 송금했다. 이에 A사는 B씨가 재산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한 증여 행위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사의 주장을 인정해 B씨에게 3,000만원과 8만7,000달러를 한화로 환산한 금액 모두를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아내가 자녀와 함께 미국으로 간 후부터 B씨가 주기적으로 생활비와 교육비를 송금했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3,000만원 이체에 대해서는 2심 판단이 맞지만 B씨가 도피 직전 아내의 오빠와 협조하는 등 증여의 성격으로 봐야 한다며 사해행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B씨의 아내가 선의의 수익자라고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사해행위 취소소송에서의 수익자의 악의 추정, 선의 증명 및 그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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