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재(22·CJ대한통운)의 백스윙은 슬로비디오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보통의 템포로 스윙을 했던 4년 전, 임성재는 샷 난조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백스윙 속도를 매우 느리게 가져가기 시작했다. 샷의 일관성이 높아진 그는 ‘걸어 다니는 아이언 바이런(Iron byron·스윙 로봇)’으로 불리게 됐고 결국 최고의 무대에서 챔피언의 반열에 올랐다.
임성재는 2일(한국시간) 끝난 혼다 클래식에서 빈틈없는 백스윙으로 난코스를 요리하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첫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투어 개최지 가운데 난도가 높은 플로리다주 PGA내셔널 챔피언스 코스(파70)에서도 ‘마의 코너’로 불리는 베어트랩(15~17번홀)을 정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가 코스를 지난 2001년 재설계하면서 이 같은 별칭이 붙은 베어트랩은 워터해저드를 끼고 조성됐다. 고난도 홀들이 줄줄이 이어져 해마다 우승 경쟁자들의 희비가 엇갈렸던 구간이다.
임성재는 마의 코너를 오히려 우승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날 선두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에 3타 뒤진 공동 5위로 4라운드를 시작한 임성재는 5번홀까지 버디 4개를 뽑아내며 힘차게 출발했다. 11번홀(파4)을 마쳤을 때는 단독 선두에 나서 기대를 키우기도 했지만 12번(파4)과 13번홀(파4)에서 연속 보기를 적어내 1타 차 공동 4위로 밀렸다.
우승이 다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던 순간에 임성재는 베어트랩에서 분위기를 바꿨다. 15번홀(파3)에서의 티샷이 기폭제가 됐다. 홀 2m에 붙여 공동 선두가 된 그는 16번홀(파4)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뜨렸지만 파로 잘 막아내 이 홀에서 보기를 적어낸 매켄지 휴스(캐나다)를 제치고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17번홀(파3)에서는 휴스가 약 17m 장거리 버디에 성공했으나 임성재도 2m 남짓한 버디 퍼트를 침착하게 성공시켜 단독 1위 자리를 유지했다. 18번홀(파5)에서는 세 번째 샷을 벙커에 빠뜨렸지만 마지막 고비를 파로 잘 넘겨 정상에 올랐다. 베어트랩에서 승부수를 던진 게 주효한 셈이다. 이날 가장 어려웠던 15번과 17번홀에서 나온 버디는 모두 13개에 불과했고 이 두 홀에서 모두 버디를 기록한 선수는 임성재와 공동 4위로 마친 대니얼 버거(미국) 둘 뿐이었다.
6언더파 274타의 임성재에 이어 휴스가 1타 차 2위(5언더파)에 올랐고 1타 차로 임성재를 추격하다 마지막 홀에서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려 보기를 범한 플리트우드가 3위(4언더파)에 자리했다. 1~4번홀 연속 버디를 잡은 안병훈(29·CJ대한통운)도 첫 우승을 노렸으나 이후 파 행진을 벌이다 1타를 잃어 공동 4위로 마쳤다. 안병훈은 이번 시즌 다섯 차례 톱10에 입상해 이 부문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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