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웃는남자’를 통해 제7회 예그린 뮤지컬 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은 박강현에게 ‘웃는 남자’는 시그니처 같은 작품이다. 타이틀롤을 맡아 뮤지컬의 시작부터 성장 과정 모두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강현은 “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쏟으며 공연에 임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 초연부터 재연 막공까지 총 59회차의 공연을 소화해낸 박강현은 더욱 짙어진 감정선으로 ‘정의’와 ‘평등’이라는 시의성 있는 주제를 밀도 있게 풀어내 ‘그윈플렌의 정석’이란 평을 이끌어냈다.
재연을 통해 한층 더 깊어진 ‘그윈플렌’으로 합격점을 받은 박강현은 내 손으로 만들었던 작품이라 더더욱 어떻게 하면 깊이를 가져갈지 고민을 많이 했단다. 커튼콜 때 제대로 서 있지 못할 정도로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낸 배우. 그는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만큼 더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의 깊이가 그만큼 깊어진 까닭이다.
“데아와 우르수스를 대하는 마음이라든지,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서는 태도가 더 강력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체력적으로, 심적으로 더 힘들긴 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니까 더 쏟아붓는 것 같다. 온 마음과 진심으로 하는 건데 옳은 방법일까 고민도 가끔 하면서요. 이렇게 힘든 게 맞나 싶을 정도다. 근데 벌써 요령껏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무대포로 부딪히는 것 같다. ”
이번 공연에서 박강현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연출부와 항상 이야기를 나누며 열심히 장면의 순서나 대사를 바꿔보기도 했다. 그렇게 박강현은 무한성장했다. 연출자인 로버트 요한슨의 칭찬세례도 그의 몫이었다. 박강현은 “제 공연을 본 로버트 요한슨이 ‘지금까지 공연 중에 가장 완벽했다. 내가 원하는 그윈 플렌의 모든 것을 다 표현해줬다’라며 칭찬을 했다”고 말하며 뿌듯한 모습을 보였다.
박강현이 진심을 다해 외치는 ‘그 눈을 떠’ 넘버는 빼 놓을 수 없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밑바닥 신분에서 최고로 높은 귀족이 된 그윈플렌은 가난한 자들의 고혈로 자신들의 부를 채우는 앤여왕과 상원의원들에게 호소한다. “그 눈을 떠. 지금이야. 가진 것을 나눠봐. 자비를 베풀어줘. 더 늦으면 안돼”라고. 귀족 신분을 되찾기 전까지 밑바닥 삶을 살아온 그윈플렌이기에 부와 지위를 가진 상위 1%가 그들에게 연민을 갖고, 차별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강현의 흔들림 없는 눈빛, 강단 있는 목소리와 분명한 딕션은 ‘그 눈을 떠’ 장면에 더욱 설득력을 더한다. 정확한 딕션 비결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 정확하게 알고 전달하려는 의지”에 있었다. 이는 선배 정성화 배우가 설파한 관객을 구경꾼에 비유한 설명이 큰 도움이 됐다.
“정성화 형님이 길을 가다가 어느 사람과 시비가 붙었을 때 싸우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공연에서는 사실 관객 보라고 하는 거지만, 실제 무대에선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거다. 구경꾼(관객들)에 둘러싸여서 내 말이 맞는다는 것을 나랑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구경꾼에게 인정받게 하면 내가 이기는 뉘앙스 말이다. 나는 앞사람에게 말하는데 모두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대사를 내뱉는다.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의지와 함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한글 장단음이 있는데 그런 것을 신경 쓰고, 가끔 빠르게 얘기하면 잘 안 들리는 발음은 약간 느리게 얘기하면서 딕션을 잡아간다.”
관련기사
EMK뮤지컬컴퍼니의 오리지널 뮤지컬인 ‘웃는 남자’는 2018년 초연 당시 국내 뮤지컬 시상식을 모두 휩쓴 최초의 작품으로 화제가 됐다. 그럼에도 가장 아쉬운 부분은 타이틀 대사인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의 지옥으로 세워진다’의 의미구현이 다소 빈약하다는 점.
이에 박강현은 “극 중 가난한 자의 지옥이 안 보인다. 가난한 자들의 지옥이 보여야 메시지가 관객에게 와닿을 텐데 그런 것조차 함축되어있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고 언급했다. 물론 정해진 러닝타임 안에 조금 더 잘 설명할 수 있기 위해 창작진과 배우들이 노력했다.
“배우로선 제가 할 수 있는 노력 안에서 진심을 다 하는 것밖에 없다. 전개가 빠르고 한정된 시간 내에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 시켜야 하는 거다. 4시간 공연이면 조금 더 잘 설명할 수 있고, 영화였다면 효율적으로 컷 전환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것도 한국 뮤지컬 발전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빠른 시간 안에 주인공으로 올라서며, 실력을 인정받은 5년차 배우 박강현. 그는 후배 뮤지컬 배우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이에 그는 “빨리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 많이 배워가는 과정이고 성장하는 과정이다. 해야 할 것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은데 과분하다.”고 말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박강현은 자존감이 센 배우다. 스스로 강해지는 것만이 살길이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 앞에선 자신이 아닌 ‘초인’이 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추운 겨울에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자신이 너무 나약해 보여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찬물 샤워를 하고 외출하면 몸에 김이 나면서 따뜻하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최근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내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스스로 질문을 하다보면 구체적인 답이 나오면서 도움이 될 때가 있단다. 머릿속으로만 막연하게 고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들으면서 답을 내리면 명료해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일인데, 오디션 몇 번 안 된다고 포기해버리면 정말 의지도 없는 나약한 사람이 되는 것 같더라. 나한테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끝까지 선택한 길을 가보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당장 눈앞에 아무것도 없고 오디션도 떨어지고 의기소침해 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왜 못 하겠나. 그렇게 내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강하게 먹게 되는 것 같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