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일을 전혀 염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이미 길리어드의 근간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에요. 사람들이 자문을 해보길 바랬습니다. ‘미국이 전체주의로 나아간다면 어떤 모습의 국가가 될 것인가?’라고요.”
가까운 미래의 미국에 수립된 가상의 정권 ‘길리어드’를 무대로 성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녀이야기’가 출간된 지 34년. ‘길리어드’의 붕괴 과정을 다룬 속편 ‘증언들’은 30여 년의 공백이 무색해지는 무서운 흡입력으로 독자들을 암울한 ‘길리어드’의 세계로 되돌려 놓았다.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서울경제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늘 그랬듯이 관련성을 내포하면서도 개연성 있는 ‘좋은’ 작품을 쓰고자 한다. 때문에 후속작에서는 길리어드 같은 사회에서 실제 벌어질 만한 일과 관련이 깊으면서도 충분히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큰 인기를 끌었던 전작을 내놓은 지 30여 년만에 내놓은 속편은 여든 한 살이 된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적잖은 도전이었지만, 노작가는 녹슬지 않은 필력과 더 단단해진 내공으로 전체주의 민낯을 날카롭게 고발하며 전 세계 독자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애트우드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속편을 내놓은 데 대해 애트우드는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딱히 부담은 없었다. 이 나이쯤 되면 부담스러울 게 없다”며 “후속작을 쓰고 있다고 하자 출판사에서 깜짝 놀란 반응이었다”고 집필 과정을 돌아봤다. 물론 고민은 있었다. 오브프레드라는 주인공의 목소리로 전개된 ‘시녀이야기’의 모작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속편은 그로부터 16년 뒤의 미래, 세 명의 화자를 통해 전개했다. 전편에 등장하는 이들이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작가의 궁금증에서 속편이 시작된 셈이다.
‘증언들’에서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전체주의 정권 길리어드는 반란이나 저항이 아니라 내부의 비밀이 폭로되면서 결국 붕괴되지만, 전편부터 이어지는 길리어드 사회의 모습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완전한 공상의 세계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애트우드는 “미국은 이미 길리어드의 근간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다.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고,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다”라며 “실제 여성 권리에 대한 반동이 이미 미국 일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자신의 작품이 인기를 얻는 것은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 암울한 미래를 그리는 디스토피아 소설이 인기를 끄는 것도 “독자들로 하여금 정부가 하는 일에 경각심을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길리어드는 무너졌지만, 그의 암울한 세계관에 아직도 목말라하는 독자들은 후속작을 기대할 법도 하다. 하지만 애트우드는 “그럴리가!”라며 단호한 반응을 보였다. “소설을 쓰려면 구상부터 집필까지 3~4년이 걸린다. 내 나이가 여든이다. 조만간 그런 장기 프로젝트는 엄두도 못 내는 상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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