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세 번 연거푸 고개를 숙였습니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은 빼고’ 칼럼 고발 건, 대구·경북 봉쇄 발언, 인터넷전문은행법 부결 건 모두 원내대표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로서 고개를 숙였고, 당 안팎에서는 그의 ‘겸손 리더십’이 여당을 위기에서부터 구해내고 있다는 찬사가 나옵니다.
━ “의원 개개인의 자유로운 소신투표가 만들어낸 결과였지만 본회의 진행에 혼선이 일어난 것에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
이에 야당은 극렬 반발, “여당의 사과가 없다면 국회 본회의를 재개할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윤후덕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사태를 수습하고자 김한표 미래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와 협상에 나섰고 이러한 내용을 전달받은 이 원내대표는 ‘쿨하게’ 사과하기로 했습니다. 이 원내대표 본인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국회를 열어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결단한 겁니다.
이는 지난 한 달 새 이뤄진 세 번째 사과였습니다. 앞서 이 원내대표는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대구·경북(TK_ 봉쇄’ 발언도 대신 사과했습니다. 지난달 27일 홍 수석대변인이 고위당정청 회의 후 브리핑 과정에서 ‘봉쇄정책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부 측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최대한 이동 등의 부분에 대해 일정 정도 행정력을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발언 이후 대구 등에서 성화가 들끓자 이 원내대표는 바로 다음 날 “대구 시도민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해 송구하다”고 했습니다.
임미리 교수가 쓴 ‘민주당은 빼고’ 칼럼 고발 건도 사과했습니다. 당시 고발을 주도했던 것은 홍익표 수석대변인과 윤호중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로 원내 지도부와 큰 관련성은 없었고 원내대표 관계자도 “잘 몰랐던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교섭단체 대표 연설장에 올라 공식적으로 “송구하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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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실에선 “왜 남의 잘못까지 나서서 사과하느냐”며 연설문에 사과 메시지를 담는 데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원내대표는 본인의 잘못인 것처럼 고개를 숙였습니다. 과거 ‘투사’ ‘강성 운동권’이라 불리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이 원내대표의 변화는 취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는 원내대표 출마 정견발표를 통해 “레프트윙에서 이젠 미드필더로 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라면 좌파 운동권의 투쟁심보다는 집권 여당 대표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 원내대표는 매 사과 때마다 “집권여당의 대표로서”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 원내대표의 ‘사과 리더십’이 여당을 위기로부터 구해내고 있다는 당내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이 다소 오만하게 비춰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하는 사과라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인터넷은행법 역시 원내대표의 사과가 없었다면 긴 국회 파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TK 봉쇄, ‘민주당은 빼고’ 칼럼 사건 역시 중도표를 잃을 수 있었던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원내대표 앞에는 마지막 고비가 남아있습니다. 바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추가경정예산안 협상입니다. 야당은 이미 “소상공인, 중소기업에게는 빚을 내서 기한도 없이 버티라는 무책임하고 생색내기에 불과한 추경”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예산안 협상 때와 같은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습니다. 과거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 원내대표와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그리고 오신환 원내대표가 협상을 위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여당은 원래 70%는 양보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 의장의 주문대로 이 원내대표가 추경 협상에도 ‘통 큰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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