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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우선 경제주체들을 살려야 한다

구정모 대만·CTBC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

1·3·4위 교역국 모두 韓에 빗장

中企·소상공인 피해회복 오래 걸려

적극 재정확대로 급한불부터 꺼야





역병(疫病)이 창궐했다.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연기됐던 개학을 맞아 대만으로 돌아오자마자 필자는 격리됐다. 공항에서 검사를 마친 후 서울~대구 정도의 거리를 셔틀택시를 타고 학교 기숙사로 돌아와 현재 자가격리 중에 있다. 격리된 나 자신의 처지보다는 진심으로 나의 조국이 걱정될 뿐이다.

금융시장은 공황이다. 미국 채권금리는 사상 최저로 내려갔으며 주식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사회는 혼란이다. 온갖 유언비어들이 떠돌며 정치적 희생양을 찾고 있다. 과거의 흑사병·관동대지진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는 환난(患難)이다. 가게는 비었고 공장들은 멈추고 있다. 오직 마스크를 구하려는 줄만 장사진을 이룰 뿐이다.

경제 환난은 이제 시작이다. 경제활동이 아예 중단됐다. 기초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먼저 쓰러질 것이다. 아르바이트생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은 급여가 끊길 것이다. 3월에도 역병이 잡히지 않는다면 역병이 아닌 경제가 더 많은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더구나 일본과의 상호 입국제한이 대폭 강화되면서 양국관계에 또 다른 갈등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는 한국 경제에는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중국 및 베트남과의 입국제한 확대에 따라 경제 및 인적 교류가 위축되고 있는 판에 일본까지 덧붙여 1·3·4위 교역국 모두 한국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꼴이 됐다. 설상가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패키지 대책을 내놓았다. 재정 여력이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적자 국채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추경 규모는 예상보다 작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부채 및 금리 인하에 대한 신중론을 펼치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내릴 때까지 금리를 낮추지 않았다. 역시나 정책 여력이 충분하지 못해 과감한 행동을 망설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 주체들의 경제활동 자체가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이 있다 하더라도 멈춰버린 경제활동, 민간의 총수요 감소를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재정 확대는 필요하다. 기초체력이 부족한 경제 주체들이 쓰러진다면 경제가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국가의 수장이 경제를 선악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지만 착한 임대료 운동, 국가의 세제혜택 보답과 같은 정책은 확실히 필요하다. 추가로 자영업자들에 대한 금융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당장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경제 주체들이 도태될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은행의 2월 금리 결정은 매우 아쉽다. 향후 4, 5월에 되돌리는 결정을 하더라도 한국은행은 선제적 조치의 결단을 내렸어야만 했다. 그들이 보는 통계자료상의 우리나라의 높은 가계부채는 그저 곡선상의 그래프인가. 곡선상의 점 하나하나가 우리의 가족이자, 기업들이다. 금리 25bp 인하는 당장 수많은 가계의 수조원의 이자비용 부담을 경감시켰을 것이다.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다음날 미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며 개입 의사를 나타냈고, 금통위 5일 후 호주는 금리를 인하했다. 그다음 날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긴급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한은 총재가 마스크를 쓰고 유튜브로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을 보이며 신중론을 펼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미국 금리 인하 이후에는 금리 인하만으로 코로나 사태를 잠재울 수 없다고 했다. 거시적 판단 오류에 이은 보신주의가 불러온 명백한 실기(失期)다.

의료진과 공무원부터 일반 시민까지 각계각층에서 역병을 막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늘 그래 왔듯이 이 어려움을 보란 듯이 극복해낼 것이다. 문제는 역병의 극복 이후다. 과거 경제 위기 때마다 쓰러진 경제 주체들을 다시 살려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가. 당장의 침체는 못 막더라도 정책당국은 순발력 있고 단호한 결단을 내려 일단은 경제 주체들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경제로 전염된 역병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 나아가서 역병으로 더 나빠진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지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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