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속도가 미국에서도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DC에서도 사실상 확진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미국 전역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시애틀에서 미국 내 첫 확진자를 낳은 코로나19가 켄터키와 오클라호마 등 중부를 거쳐 뉴욕 등 동쪽으로 퍼지는 가운데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DC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정치권 거물급들이 참석한 행사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는 등 사태가 악화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걱정하지 않는다”며 선거 캠페인을 예정대로 소화하겠다고 밝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축소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DC 시장은 50대 남성 1명이 코로나19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밝혔다.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등 대륙 서쪽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전염이 결국 경제 중심지 미국은 물론 수도인 워싱턴DC에 도달한 셈이다. 이 남성은 현재 양성 추정 단계다. 양성 추정 환자는 주나 카운티, 시 단위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지만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 확진 판정이 나오지 않은 단계를 가리킨다. 더구나 이 남성은 여행은 물론 코로나19 확진자와의 접촉 이력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남성 외에도 버지니아주 포트 벨부아에 배치된 해병 1명이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워싱턴DC 방문 중 코로나19 증세를 보인 50대 남성 1명도 인근 메릴랜드주에서 검사를 받고 입원 중이다.
워싱턴DC에는 백악관과 각종 관공서, 금융기관, 의회, 전 세계 각국의 대사관 등이 밀집해 있다. 지방 차원을 넘어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컨틴전시 플랜(비상사태 대응계획)’ 수립 등 초비상이 걸리게 된 셈이다. 워싱턴DC가 여야 간 예산안 합의 지연으로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를 맞는 것은 흔하게 나타났지만 전염병 여파로 수도의 업무가 영향을 받게 된다면 이는 초유의 일이다.
미국 거물급 정치인들의 감염까지 우려되고 있어 코로나19 대응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지난달 26~29일 워싱턴DC 인근의 메릴랜드주 포트 워싱턴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참석자 1명과 지난 1~3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미 유대계 이익단체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 정책 콘퍼런스 참석자 2명이 모두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CPAC에는 트럼프 대통령 등 주요 정치인들이 참석했으며 펜스 부통령은 두 행사 모두 참석했다.
하지만 대선 국면에 접어든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DC의 첫 양성 추정 반응과 CPAC 참석자의 확진 사실을 들은 뒤에도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린 잘해왔다”며 대규모 정치 집회 개최 등 선거 캠페인을 예정대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4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치사율 3.4%는 ‘가짜 숫자’라며 자신의 감에 따르면 1% 내외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줄곧 코로나19의 충격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는 8일 트위터를 통해서도 “우리는 완벽하게 협력해왔다”며 코로나19 확산에 매우 빠르게 대응해왔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칼럼을 통해 “정부는 몇 주 전에 연구소들이 바이러스를 자체 테스트하도록 장려하고 검사 비용을 보험에 맡겨두는 것 대신 정부가 부담하겠다고 약속했어야 했다”면서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주의자들의 불안을 편파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이며 ‘황당한’ 비난에만 빠져들었다”고 비판했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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