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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복’ 터진 강말금, “평생 쥘 수 있는 동아줄을 잡았어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연배우

서른에 연기를 시작해 마흔에 첫 주연을 맡은 강말금은 ‘배우의 삶이 좋다’고 했다. 아니 ‘죽을 때까지 평생 쥘 수 있는 좋은 동아줄을 잡았다’고 말했다. 연기로 밥을 벌어 먹고 살 수 있다는 의미 외에도 배우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면이 낡아지지 않게 노력하는 삶 말이다. 열정만으론 통하지 않았지만 허무해질 찰나도 허용하지 않는 특별한 배우를 만났다.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의 단편 영화 ‘자유연기’ 주연에 이어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의 타이틀 롤로 대중과 만난 강말금은 한마디로 ‘궁금한 배우’였다. 느릿느릿하고, 정적인 느낌을 말간 얼굴로 보여주는 그는 새로운 배우 분과를 개설했다고 할까. 화려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우선적으로 보이는 배우, 평범해 보이는 얼굴에 막강 연기력으로 다채로운 간을 맞추는 배우와는 또 다른 얼굴의 발견이다.





20대엔 평범한 직장인 겸 생활인으로 살았다. 서른을 코 앞에 두고 저녁엔 한탄하며 술먹고 아침엔 울면서 회사를 다니는 생활을 그만뒀다. 고교시절부터 했던 연극반에 대한 기억이 그를 연기자의 길로 이끌었다. 2007년 연극 ‘꼬메디아’로 데뷔 이후 할머니 역을 주로 맡았다. 그의 연기 컬러가 노역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에도 편견은 존재했다. 이번엔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연령대의 영화 프로듀서 역을 맡았다. 만화 속 ‘씩씩한 캔디’ 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환상을 걷어낸 21세기 캔디의 모습에 가깝다. 강말금의 매력을 제대로 담아낸 인생 캐릭터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그가 맡은 주인공 ‘찬실’은 평생 일복만 터지던 영화 프로듀서로 갑작스러운 실직 후 전에 없던 ‘복’이 굴러들어오게 되는 인물이다. 김초희 감독은 “‘찬실’이라는 인물은 열심히 살아온 인물이기 때문에, 얼굴에 열심히 살아 온듯한 그런 느낌이 나타나야 하고, 그것이 가지는 진정성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강말금 배우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며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인생의 어두운 지점과 좌절을 다루지만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점이 매력적인 영화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했나. 찬실이가 인생의 밑바닥에 있을 때 장국영(김영민)도 나타나고, 좋은 글도 등장하고, 좋은 할머니(윤여정)를 만나게 된다. 관객의 복잡했던 머릿속도 하나 하나 정리되가는 순간이기도 한다. 그는 “보고 나면 복잡한 머리가 가벼워지고 심플해질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이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 영화의 페르소나가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며 설렘과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10년차 영화PD지만 한순간 설 자리를 잃고 자신을 찾아가는 ‘찬실’을 연기하면서 위축 돼 있는 자신과는 다른 활기가 넘치는 찬실이를 보며 지난 시절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찬실이를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이유도 깨달았다고 했다. 찬실이는 절대 남 탓을 하지 않았던 것. 찬실이에게 굴러들어오는 ‘인복’처럼 강말금에도 인복이 넘쳤다.

20대를 함께한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기로 했다. 30대 때 배우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선 ‘말금’이란 이름을 택했다. 본명은 강수혜다. 시인인 친구가 잠시 쓴 닉네임이다. 예명인 ‘말금’은 눈물이나 한숨 등 물기의 흔적이 없는 이름을 만들고 싶어 지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들으면 연약하게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드는데, ‘말금’이란 이름에선 강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삶이 180도 달라지진 않았다. 서른 살에 연기를 시작하고 서른다섯 살까지 실패만 했을 정도. 늘 추락하는 서사만 만들지 않았다. 가끔씩 무너져내릴 때마다 힘을 주는 연기요정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바로 ‘자유연기’에 함께 나온 권지숙 배우다. ‘자유연기’의 열악한 제작 상황을 알고 배우 캐스팅 견인은 물론 강말금에게 응원금을 건네기도 했다. 병원에서 모의환자 아르바이트로 받은 비용을 후배에게 전달한 것. 강말금은 “‘영화의 요정’이자 그런 천사가 없다”며 눈빛을 빛냈다.

연극 판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기란 쉽지 않았다. 막상 연극을 시작했지만 가진 게 없어서 답답했다. 자신의 특기인 아코디언을 배워 나가듯, 하나씩 하나씩 재능을 늘려갔다. 부산 사투리를 서울말로 바꿔보기도 했다. 고단한 삶과 뜻대로 되지 않는 연기 앞에서, 마트와 대학로를 번갈아가며 오가는 시간이 반복되기도 했다.

생활을 위해서 ‘마트행’을 택했다고 말했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때론 비슷한 캐릭터를 연달아 하는 게 힘들어서, 또 어떤 때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 고뇌보다 번뇌에 가까운 고통 속에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래서일까. 강말금은 애증하는 연기를 절대 그만두진 않을 것이고, 잠시 쉴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게 열정이나 꿈이 사라져서가 아님을. 관념적인 썩은 동아줄을 끊어내고, 튼튼하고 생명력이 긴 동아줄을 잡은 그녀의 확신에 찬 말이다.

한참 영화 홍보에 바쁜 강말금은 “배우라는 직업이 번잡함에 휘둘리기 좋은 직업이라 늘 초기화화는 작업을 빼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외부일이 많을 땐 집에서 깨끗한 일상으로 살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번잡함’의 장막을 천천히 그리고 깨끗하게 걷어버리는 좋은 글을 들려줬다.





“배우고자 힘쓰면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

방법을 익히려고 하면

날이 갈수록

할 일이 줄어든다

점점 줄어

할 일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결국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으리라“

[사진=양문숙 기자]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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