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년 후 임기가 종료돼도 다시 대통령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헌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재집권을 향한 야욕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원유 감산을 거부한 것도 푸틴의 이 같은 집권연장 시나리오와 맥을 같이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하원(두마) 개헌안 2차 독회(심의)에 참석해 “발렌티나 테레슈코바 하원의원이 앞서 내놓은 제안은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시민의 (입후보) 제한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며 “원칙적으로 그러한 방안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이자 러시아 여당 ‘통합러시아당’ 소속의 테레슈코바 의원은 이날 개헌안 심의에서 “대통령 임기제한을 없애든지 개헌안에 현직 대통령도 다른 후보들과 함께 입후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했다.
테레슈코바 의원의 주장은 개헌 이전의 대통령직 수행 횟수를 ‘제로’로 계산하자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경우 이미 집권 4기째지만 오는 2024년 대선 때는 기존 임기가 계산되지 않은 상태로 다시 대권에 도전할 수 있게 하자는 의미다. 러시아 상원이 개헌안을 채택하면서 다음달 22일 국민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현재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 3연임 금지 조항을 두고 있다. 지난 2000년 대통령 임기가 4년일 당시 대통령직에 당선된 푸틴 대통령은 이 법으로 2008년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이때부터 임기가 6년으로 바뀌었고 푸틴 대통령은 2018년 재선에 성공한 뒤 집권을 이어왔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그는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푸틴 대통령은 다만 “이 같은 개헌은 헌법재판소가 헌법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공식 판결을 내릴 때만 가능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해당 개헌안은 헌법재판소에서도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고 가디언은 내다봤다. 개헌안은 상원의 승인을 거쳐 다음달 22일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앞서 6일 러시아가 OPEC+ 회의에서 원유 감산을 거부한 것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이 다음달 개헌 국민투표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동안 러시아는 원유 감산이 미국 셰일 업체의 배만 불린다고 주장해왔다. 셰일오일의 생산단가는 기존 원유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유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면 미국 셰일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유가 폭락으로 타격을 받은 셰일 업계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가 하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의 통화에서 국제 에너지 시장에 대해 논의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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