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볼은 다 비슷비슷하다. 지름 4.2㎝, 무게 45.9g에 공기저항을 덜 받으려 옴폭 팬 딤플이 특징이다. 요즘은 빨강·노랑 등 총천연색 ‘컬러볼’이 유행이지만 대개는 흰색이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골프볼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가령 비시즌에 종종 골프를 치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거 류현진은 ‘00’이라고 찍힌 골프볼을 쓴다. 골프볼 제조사는 동반자 간 혼동을 막기 위해 제조사 로고 아래에 보통 1부터 4까지인 플레이 넘버를 새겨 판매하지만 최근 일부 업체들이 보다 다양한 숫자를 새기는 ‘넘버링 마케팅’으로 골프볼의 차별화에 앞장서고 있다.
골프 구력이 10년쯤 되는 류현진이 고른 숫자는 ‘00번’이다. KBO 리그 한화 시절에 등번호 99번을 단 뒤 미국 무대 진출 이후에도 줄곧 99번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지만, 골프장에서는 류현진의 상징이 00번인 셈이다. 타이틀리스트 관계자는 12일 “Pro V1·V1x 골프볼을 대상으로 00번부터 99번까지 스페셜 플레이 넘버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데 류현진 선수는 매장을 직접 방문해 00번 제품을 사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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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선수들은 취향과 정체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볼에 드러낸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3위 박성현의 골프볼에는 ‘NDL’ 로고가 선명하다. NDL은 ‘남달라’의 초성을 알파벳으로 옮긴 것. 성공하려면 남들과 달라야 한다며 골프백에 새긴 ‘남달라’가 곧 그의 별명이 됐다. 이후 남달라는 더 눈에 잘 띄고 간결한 NDL 로고로 발전했다. 의류 후원업체인 빈폴골프가 선수와 머리를 맞대고 ‘박성현 라인’ 론칭을 준비하던 중 NDL 로고가 탄생했다. 박성현은 로고 초안을 직접 그려 제안하는 등 남다른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골프용품 후원업체인 테일러메이드가 골프볼로 NDL 로고를 옮겨왔다. 글로벌 골프용품 업체 테일러메이드가 국내 선수의 이름이나 심벌을 골프볼에 새겨 내놓은 것은 ‘박성현 볼’이 최초다. 박성현은 경기에서 반드시 이 NDL 볼만 쓴다. 다만 일반 판매용은 아니다. 테일러메이드 아이언 세트를 사면 NDL 볼 1더즌(12개)을 주는 식의 프로모션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박성현 팬들 사이에서는 아무나 못 구하는 ‘희귀템’으로 통한다.
테일러메이드의 선수 에디션 중 또 하나 눈에 띄는 볼은 ‘캥거루 볼’이다. 호주를 대표하는 남자 프로골퍼인 제이슨 데이를 위해 호주의 상징인 캥거루 문양을 넣었다. 볼에 적힌 숫자 ‘87’은 데이가 태어난 1987년을 뜻한다. 화려하고 기발한 패션센스로 유명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인기선수 리키 파울러(미국)는 볼 디자인에 참여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디자인 작업을 주도했다. 로고의 색상 조합과 형태·위치·배열까지 모두 파울러의 머리에서 나왔다. 로고 사이의 간격을 퍼터의 정렬 라인과 정확하게 맞추는 등 기능성에도 신경 썼다.
브리지스톤골프는 2018년부터 타이거 우즈가 쓰는 볼에 ‘TIGER’ 로고를 찍어 지급하고 일반에도 판매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타이거 볼을 출시한 그해에 우즈는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하면서 ‘골프황제’로 돌아왔다. 5년 만의 PGA 투어 우승이었다. 이듬해에는 최고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우승에 이어 PGA 투어 통산 최다 우승 타이기록(82승)까지 작성했다. 우즈의 완벽한 부활과 함께 타이거 볼 판매도 ‘대박’이 났다. 볼에 새겨진 로고는 언뜻 단순하고 건조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골프황제가 주는 무게감 덕분이다. 우즈는 타이거 볼의 최신 버전 개발 과정에서 커버 기술에 대한 의견까지 내놓는 등 볼 제작에 점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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