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영재원에 합격하기 위한 사교육을 받는다. 특목고 진학을 위해 중학교 성적을 관리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내신 등급 올리기에 고군분투한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시험은 계속된다. 취업을 위해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 등등. 대한민국은 ‘시험공화국’이다. 시험만능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시험인간’이 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청년 및 청소년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사회학자 김기헌 박사와 심리학자 장근영 박사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시험 제도가 선발과 경쟁에 익숙한 ‘시험인간’들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사회학자와 심리학자가 공저한 신간 ‘시험인간’은 시험은 곧 공정함이라 믿는 한국 사회만의 특징과 시험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심리 상태를 파고든다.
책은 ‘시험인간’들이 시험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 얽매여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시험은 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수능 점수는 순수한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반영한 것이고, 이 점수에 따라 보상을 달리하는 사회체계가 정당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수능 시험 전날까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공정하지만은 않다. 수능 시험은 부유한 학생과 가난한 학생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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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험인간’들은 일등을 하고 합격을 하면 행복이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기준으로 삼아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합격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불안과 열패감만 남을 확률이 높다. 저자들은 ‘시험인간’들의 세상이 계속될 경우 시험만이 공정하다는 맹신 속에서 사회 제도를 비판적으로 볼 수 없으며, 유년부터 청년까지 경쟁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시험을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험’은 필요하다. 시험은 다음 학습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성장기 학생들에게 학습을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좋은 시험은 학습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험이다. 시험을 치는 이들의 자발성과 필요성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저자들은 “시험과 시험인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1만6,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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