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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농업의 또 다른 기능, 치유

김경규 농촌진흥청장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농업과 농촌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치유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국민의 건강과 정서 함양을 위한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최근 귀농·귀촌 인구가 많아지고 도시권에서는 볕이 드는 작은 땅만 있어도 텃밭을 일구고 꽃과 채소를 가꾸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소규모의 경작을 통해 살아 있는 생명체와 교감하며 수확의 기쁨을 얻고, 건강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19세기 중반 독일의 의사였던 모리츠 슈레버 박사는 당시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환자들에게 독특한 치유 처방을 내린다. 병의 원인이 햇볕을 쬐지 않고 일만 해서 생기는 것이니 밖에 나가 햇볕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흙에서 채소를 가꾸라고 한 것이다. 정신과 육체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농사활동의 치유기능을 치료에 적용한 것이었다. 농업의 치유기능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부가가치를 인정한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농업선진국들은 이미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치유농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치유농장과 전문인력 양성도 활성화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꽃과 채소를 가꾸거나 동물을 보살피는 활동을 통한 치유 효과에 관한 연구가 농촌진흥청과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 만성질환자의 호르몬 분비능력 개선이나 노인들의 우울감 해소 등 정신적·신체적 건강 증진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학교 텃밭과 동물 돌보기 활동이 학교 폭력과 학생들의 우울감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들도 많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치매환자도 조만간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자살률, 특히 노인과 청소년 자살률은 OECD 평균을 훨씬 넘는 심각한 수준이다. 다양한 사전 예방활동과 사후적 치유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농사는 가꾸고 기르고 보살피는 동식물과의 교감활동이다. 이번 치유농업법 제정으로 생산 위주 농업의 기능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농촌교육농장 등 기존 다양한 인프라와 농촌 공간의 활용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고 수요도 충분하다.

다산 정약용은 ‘하농(下農)은 게을러서 풀을 기르고, 중농(中農)은 열심히 일해 수확을 많이 거두는 것이고, 상농(上農)은 땅심을 기르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경지의 성농(聖農)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 했다. 농업의 본질이 농작물의 수량을 늘리거나 환경을 잘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데도 있다고 한, 동서고금을 관통한 다산의 혜안이 놀랍다.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치유농업 활동이 추구하는 바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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