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5월17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을 방문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원자력 발전소와 비행기 사고를 비교한 적 있다. 그는 원전 불가론을 겨냥해 “비행기는 사고율이 낮지만 치사율은 높다. 그렇다고 비행기를 타지 말아야 하는가”라고 했다. 원전 사고율이 100만 분의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좌파와 환경단체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원전 사고는 터지면 초대형 참사라는 점과 사고 가능성이 실제와 다르다는 분석이 있었다. 국민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논지였다.
9년 전 얘기를 꺼낸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둘러싼 논란이 그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중국인 입국 금지가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야당과 언론의 지적에도 중국인 입국 금지를 끝내 하지 않았다.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금융에 리스크 제거라는 개념이 있다. 돈을 한 푼도 잃기 싫은 사람은 땅에 묻어두면 된다. 반면 높은 수익을 노리는 사람은 주식을 사고 주가지수연계증권(ELS)에 투자하며 후순위채를 가입한다. 이때는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적절히 투자자금을 분산하고 어느 정도 손실이 나면 팔아야 한다. 이런 원칙이 없으면 원금을 다 까먹을 수 있다. 거꾸로 이득(수익률)은 예금과 비교가 안 된다.
세상일도 그렇다. 중국인 입국을 막는 것은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이다. 이 셈법에 의학적 지식은 필요 없다. 비행기 사고가 날까 두려워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무식하지만 효과는 있다. 어찌 됐든 비행기 사고로 죽을 일은 없다.
하지만 잃는 게 많다. 청와대와 정부가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 지난달 말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우리 쪽 불이익이 더 크다”고 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의약품 때문이라지만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컸을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사태에서 보여줬듯 중국은 자신을 배신한다고 느끼면 무차별적으로 보복한다.
이 논리는 이명박 정부와 같다. 원전을 잘 관리해서 써야지 무턱대고 막거나 없애면 손해가 크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민안전을 내세워 원전의 경제성을 철저히 무시한 게 지금 정부다. 세월호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긴 이들이다. 그런데 입장을 바꿨다.
입국금지는 효과가 없는 게 아니다. 대가가 클 뿐이다. 왜 미국이 중국과 유럽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했을까. 한국인을 막는 나라는 왜 100개국을 넘었나. 프랑스가 전국 상점과 음식점 영업을 중단시키는 초강수를 쓴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 수 배우고 싶다”고 할 정도로 형편없는 나라이기 때문인가.
정부는 고위험군의 입국은 최대한 막는 것이 좋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의견을 묵살하고 정무적 판단을 했다. 리스크 관리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싶었다면 이런 전후 과정을 솔직히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사람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입국금지를 하지 않고도 바이러스를 막고 있다”며 자화자찬만 늘어놓는다. 사태 초기 중국인 입국금지를 한 대만은 지금도 사망자가 1명이다. 국내 사망자는 75명에 달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드러났듯 이 정부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코로나19 사태에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처럼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자랑하지만 뼛속까지 장사꾼인 그도 최소한 일관성은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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