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가파른 유럽에서 확진자 수가 중국을 넘어서며 혼돈의 상태에 빠진 가운데 영국 정부가 런던 봉쇄를 검토하고 있다. 유럽 각국 지도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위기로 인식하며 특단의 조치를 잇따라 내리는 모습이다. 가장 상황이 심각한 이탈리아는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의 지원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르면 20일부터 런던 봉쇄령이 내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대중교통 운영을 중단하고 가정마다 한 명만 식료품 구입을 위해 외출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정부는 또한 코로나19 대응 지원을 위해 군병력 2만명을 배치하고 20일부터 전국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기로 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롤스로이스·포드·혼다 등 자국 내 생산기지가 있는 자동차 업체를 비롯해 60여개 제조사에 인공호흡기 등 필수 의료장비 생산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날 하루에만 사망자가 500명 가까이 증가하며 누적 사망자가 3,000명에 육박했고 확진자 수도 3만5,000명을 넘어섰다. 확진자 수 대비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치명률도 전날 대비 0.4%포인트 상승한 8.3%까지 치솟았다. 중국 내 누적 사망자가 전날 대비 8명 늘어난 3,245명을 기록한 만큼 지금 추세라면 19일 누적 사망자가 중국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의료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각종 임시방편이 잇따르고 있다.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는 축구장에 천막을 설치해 임시 병실로 쓰는 긴급 대책을 내놓았다. 북서부 항구도시 제노바에서는 항구에 정박한 페리선을 임시 병원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올해 말 졸업 예정인 의과대학생 등 약 1만명의 의료진을 긴급 투입할 방침이다. 또 기존에 내린 전국 이동제한령을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중국을 넘어서면서 혼란에 빠진 분위기다. 이날 유럽 지역 전체의 총 확진자는 8만8,000여명으로 중국(8만928명)을 앞섰다. 각국 정상들은 코로나 사태를 ‘준전시 상황’이라고 강조하며 정부 조치에 따를 것을 촉구하는 모습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대국민연설을 통해 “통일 이후, 아니 2차대전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협상 수석대표인 미셸 바르니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올해 69세인 바르니에 수석대표는 앞서 3년여에 걸친 EU와 영국 간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었으며, 최근 시작된 양측의 미래 관계 협상도 지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000여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한 뉴욕주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다음주부터 맨해튼 월스트리트의 오프라인 객장을 일시 폐쇄하고 모든 매매를 전자거래로 대체하기로 했다. 뉴욕증시 거래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우려를 샀다. 미국 정부는 뉴욕주에 1,000개 병상 규모의 병원선을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중국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사실상 ‘종식’ 수순에 들어갔다. 코로나19 발생 이래 이날 처음으로 발원지 우한이 포함된 후베이성에서 신규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날 새로 확진 판정을 받은 34명이 모두 해외에서 입국한 역유입 사례여서 베이징 등 대도시에 비상이 걸렸다. 베이징시에서만 21명이 나오면서 시 당국은 해외 역유입 대책으로 국제선 항공편을 수도 베이징이 아닌 인근 도시에 우선 착륙시켜 방역 절차를 밟는 정책을 20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상황이 뒤바뀐 이탈리아에 대한 의료 지원에 나서며 ‘코로나19 발원지’라는 이미지를 씻어내려 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밀라노에 이날 중국 의료진 10여명이 도착하는 등 총 300명의 중국 의료진이 파견될 예정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진단 도구와 방호복도 이탈리아·스페인·폴란드·그리스 등에 보냈다. WSJ는 중국이 연대를 표명하며 “코로나19 발원지에서 ‘우호적인 지원자’로 국제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분석했다./베이징=최수문특파원 김기혁기자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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