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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바이러스 대참사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현재 美 부양책 '票퓰리즘'일 뿐

트럼프 방식으론 대재앙 못막아

재택근무 등 '거리두기' 권하고

민주 제안대로 실업수당 늘려야





지난 3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하늘의 축복 같은 행운이 따랐다. 백악관 입성 이후 그가 마주친 유일한 재난은 허리케인 ‘마리아’ 단 하나뿐이었다. 당시 그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수천 명의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TV 카메라는 그들의 주검을 보여주지 않았고 트럼프는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지금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지구촌 차원의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응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부실하다. 그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가공할 위협을 단순한 홍보 문제로 다루며 현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감염증의 확산 정도를 파악하고 전염 경로를 추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선별검사와 역학조사에 실패했다. 그뿐 아니다. 코로나19가 이미 미국에 유입돼 자리 잡았다는 확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제안한 건의를 묵살한 채 외국인의 입국을 막는 무의미한 조치를 택했다.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공중보건과 국민건강을 담당하는 중앙 부서 및 기관의 수장들에게 코로나19에 대한 모든 논의를 비밀에 부치라고 지시했다. 공공정책 측면에서 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린 결정으로 미국인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의도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쨌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자명하다. 우선 대형 집회를 금지하고 근로자들의 재택근무를 권장하며 위험지역을 봉쇄하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로 감염증 확산을 둔화시켜야 한다. 이것만으로 수천만 명이 감염되는 것을 막기 힘들지 몰라도 일단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둔화시켜 의료체제에 걸리는 부하를 줄이고 다소나마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연설에는 이런 조치들이 단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그는 여전히 이 모든 위험이 외국인들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것인 양 행동한다.

경제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시시각각 말을 바꾼다. 한편으로 미국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떠벌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요구한다.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그가 제시한 경제 해법은 급여세의 완전면세다. 사실 급여세 완전면세는 어마어마한 조치다. 급여세는 국내총생산(GDP)의 5.9%에 달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실시한 2009~2010년 경기부양책은 GDP 대비 최고 2.5% 규모였다. 게다가 트럼프의 부양책은 수혜 대상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고임금 근로자들이 최대 수혜자가 되는 반면 실직자 혹은 무급 병가자는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트럼프의 경기부양책은 석유와 셰일 등의 업종에 지원하기를 원한다. 화석연료에 보조금을 지급하려는 행정부의 기존 정책을 연장하려는 의도다.



반대로 민주당의 포괄적 대응책은 현시점에서 요구되는 긴박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요컨대 코로나19 무료 선별검사, 실업수당 확대와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 대한 연방 매칭 펀드 증액 등 각 주 정부가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주 예산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여 전반적인 지출규모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하나같이 경제 활력을 유지하는 데 유용한 조치이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파적 득실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적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사력을 다해 반대했던 공화당의 태도와 확연히 구분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민주당의 제안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민주당이 팬데믹을 빌미 삼아 ‘급진 좌파 어젠다’를 밀어붙인다고 비난했다. 아마도 그는 팬데믹 상황에서의 병가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모양이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총체적 붕괴다. 시장만 그런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정신까지 붕괴했다. 그의 위기 대응법은 단 세 가지다. 먼저 모든 상황은 양호하고 자신의 정책은 완벽하다고 우긴다. 이어 세금을 낮추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골수 지지자들에게 돈을 던져준다.

그러나 국제적 위기에 그의 대응법은 먹히지 않는다. 대재앙을 피하려면 그는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협력해야 한다. 트럼프의 지난 연설은 난국에 대처할 능력이 그에게 전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앞에 선 대통령은 무능하고 망상에 사로잡힌 허풍쟁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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