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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티드 버드]공포가 눈뜨게 한 인간의 야만성, 약자를 공격하다

■영화리뷰-바츨라프 마르호울 감독

전쟁이 빚은 무법·공포의 공간

상상 초월한 혐오·적대 악순환

잔혹한 장면 많아 불편할수도





히틀러와 스탈린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동유럽의 어느 나라 그리고 홀로 된 유대인 소년. 관객들은 미리 짐작한다. 어린 아이가 홀로코스트에서 간신히 살아남는 이야기가 아니겠느냐고.

맞다. 하지만 직접 겪지 않은 사건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보잘 것 없다는 말도 함께 해야겠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눈과 귀를 열고 지켜보기 힘든 장면이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되고, 상영 내내 뛰쳐 나가고 싶단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다. 허술한 상상은 참 쉽게 무너져 내린다.

지난 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자 ‘기생충’과 함께 제92회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페인티드 버드(The painted bird)’가 26일 개봉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 피어난 연민, 우정, 사랑 따위는 기대하지 말라. 러닝 타임 169분 동안 생지옥에 다녀온 기분이라고 하면 될까.



■원작 판권 구입, 섭외, 촬영까지 11년

체코 출신 바츨라프 마르호울 감독이 무려 11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첫 상영 당시부터 찬사와 논란이 오간 문제작이다.

인간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지나칠 만큼 사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영화적 장치를 통한 그 어떤 우회도 없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등장한다. 무지와 무법이 압도하는 공간이 죽음의 공포로 뒤틀릴 때 인간의 야만성이 어떻게 표출되는 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힘을 가진 자는 약한 자를 무자비하게 유린 한다. 약한 자는 더 약한 자를 찾아 혐오의 낙인을 찍고 분노 표출 대상으로 삼는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어느 순간 모호해진다.



빗발치는 폭력에 노출돼 있던 소년에게 한 어른이 구원자처럼 등장할 때, 관객은 잠시 안도한다. 하지만 그가 소년에게 알려주는 생존 메시지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선물로 건네는 생존 도구가 살인 무기라는 사실에 관객은 도덕적 혼란에 빠지고 만다.



■흑백×시네마스코프로 사실감 더해

원작은 폴란드 출신 작가 저지 코진스키의 1965년 동명 소설이다. 소설 역시 미국에서 첫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감독은 소설을 처음 읽은 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감독은 35㎜ 흑백 필름을 써서 2.35:1 비율의 시네마스코프 영화로 제작했다.

이에 서사적 풍경과 인간의 잔혹함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배경 음악은 철저히 배제했다. 인위적 감정 자극을 피하기 위해서다. 등장 인물들의 대화나 독백도 최대한 자제했다. 대신 주인공 소년 역의 배우 페트르 코틀라르가 잔인한 장면 촬영 과정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많이 신경 썼다고 한다.

한번 더 말하면 영화는 강심장을 가진 영화 마니아가 아니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고, 불쾌하다. 하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겨우 70년 전이라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당시 1,400만명에 달하는 유럽의 민간인이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그 야만의 시절과 현재 사이의 시간 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섬뜩하다. 짧은 세월 동안 인간이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살해, 유괴, 강간과 같은 전쟁 범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감독 역시 최근 영국 신문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불편해하는 이유를 직접 전했다. 허구의 폭력이 아니라 분명히 실존했던, 또한 현재도 실존하는 폭력이어서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악은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다. 악이 눈을 뜨게 하는 일은 무척 쉽다.” 감독이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청소년 관람 불가. 러닝 타임 169분.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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