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모든 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10만원씩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하위소득 계층의 시민에게 30만∼5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인구 절반에 가까운 수도권의 두 지방자치단체장이 나서자 강원·충남과 전주시·화성시·울주군 등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재난기본소득이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원래 ‘기본소득’ 제도는 국가가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돈을 지급하는 복지 정책을 말한다. 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관계없이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지급하는 내용으로 가장 사회주의에 가까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핀란드·네덜란드·스위스 등 유럽의 복지국가에서 시범 도입을 시도했지만 현실과는 요원한 제도다.
이러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서 긴박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대책에 뒤섞여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국민 1인당 1,200달러의 돈을 주기로 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얘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대책은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가장 자유시장경제적인 사고를 지닌 밀턴 프리드먼이 일찍이 주창한 ‘헬리콥터 머니’에 근거를 둔다. 경기가 나쁠 때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살포해 소비를 북돋우자는 의미다.
미국에서 이 같은 현금 살포 정책이 나온 것은 하루에 확진자가 1만명씩 늘어나고 뉴욕 시장이 군대를 동원해달라고 할 정도의 위기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린 데 이어 무제한의 달러 찍어내기를 뜻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선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부와 의회는 2조달러 규모의 재정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때마침 총선과 맞물려 많은 돈을 빨리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재정으로 지원하기로 했으니 우리나라는 적어도 100조원의 추가적인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요구가 있었고 야당의 선거대책위원장도 그 정도의 규모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이 막대한 헬리콥터 머니를 뿌릴 수 있는 것은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사용되고 미국 국채가 안전자산으로 인정받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코로나19의 피해가 막심한 유럽을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 같은 무한정의 지원책을 세울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주 열리는 3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재난기본소득을 포함한 가계 생계지원 대책을 논의한다. 고용유지 및 국채와 지자체 기금을 통한 재원조달 방안도 토의하는 중요한 회의인데 다음과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경기도·서울시와 다른 광역 및 기초지자체에서 마구 발표하는 현금성 지원 대책을 정부가 정리해야 한다. 정부가 지정한 대구·경산·봉화·청도 등 특별재난지역 외 전국 다른 지역의 가계지원 대책 사이에 차이가 있을 이유가 없다.
한정된 재원을 고려하면 모든 국민이 아니라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한 계층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취약계층·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되 중소기업 등의 노동자 고용지원 대책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가계에 푼돈을 나눠주기보다 일자리와 봉급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고용주를 돕는 것이 실질적인 생계 대책이다. 미국의 재정지원도 가계보다 기업 비중이 크다.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기본소득이나 헬리콥터 머니가 아니라 장사가 되고 공장이 돌게 만드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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