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1년도 최저임금 결정 절차가 31일 시작됐다. 그동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에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강타하면서 영세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실업대란을 막으려면 올해는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재계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이재갑 장관 명의로 최저임금위원회에 2021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최저임금법 시행령은 매년 3월31일까지 고용부 장관이 이듬해의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도록 돼 있다. 최저임금위는 심의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최저임금을 심의, 의결해야 한다. 다만 노사가 법정시한 내에 타결한 적은 거의 없어 7월께 결정돼 8월5일 고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안을 ‘동결’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발 실물경기 침체와 고용대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더 큰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고용부가 이날 발표한 ‘2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1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는 1,848만8,000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16만3,000명(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증가자와 증가율 모두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시작한 2009년 이후 가장 적다. 이달 이직자(신규 실직자) 수는 93만1,000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28.8% 늘었다. 이 중 300인 미만 사업장의 이직자 수가 84만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29.2% 늘었다. 300인 이상 사업장도 25.0%에 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 반영되기 전인데도 고용시장이 극심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코로나19 심각 단계가 2월23일 선포됐고 3월은 온전하게 심각 단계여서 3월 통계에는 더 어려운 상황이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최저임금위 사용자위원은 “지금은 최저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이 문을 닫느냐 안 닫느냐의 위기에 몰려 있다”며 “내년 최저임금은 최소 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재계는 최저임금 업종·규모별 차등화와 최저임금 산식에서의 주휴시간 제외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서 높은 인상률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동결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재계, 최저임금 차등화·주휴시간 제외 ‘패키지 요구’ 나설듯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94%가 30인미만…영세업자 타격 커
노동계선 “비정규직 보호” 명분 맞대응…보이콧 가능성도
전문가들 “인상폭 최소화하되 제도개선은 국회에 맡겨야”
‘2021년 최저임금의 칼자루’는 전년에 이어 재계에서 쥐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인 2.87%로 결정되며 올해 초만 해도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보다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분위기를 180도 바꿔놓았다.
코로나19의 타격이 영세사업장에 집중되면서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 동결은 물론이고 차등화·주휴시간 산식 제외 등 ‘패키지 제도 개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예정이다. 코로나발 실업 위기로 노동계는 수세에 몰린 모습이지만 최저임금 속도 조절과 산입범위 확대로 근로자 수혜가 줄어든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근로자의 생계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동결+차등화+주휴시간’ 패키지 요구할 듯=31일 한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불 능력’”이라며 “코로나19로 경제에 타격이 가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동결’ 필요성의 주된 근거는 코로나19발 영세사업장 타격에 있다. 지난 30일 기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건수 2만3,969건 중 30인 미만 사업장은 2만2,578건으로 94.2%에 해당한다. 코로나19의 타격이 외식업·여행업 등 서비스업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2018~2019년 최저임금 29% 인상으로 주휴수당 부담까지 따라 늘었다고 토로한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비상상황에 처해 있는 현재로서는 최저임금 동결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자영업자들은 임대료도 못 내고 있는데 동결되지 않으면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재계는 지난해에 이어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테이블에 꺼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업종별·규모별 차등화’다. 최임위 사용자위원들은 지난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서비스업과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며 차등화 논의를 요구한 바 있다. 올해도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가장 먼저 ‘최저임금 동결론’을 꺼내 드는 등 중기·소상공인을 배려하기 위해 차등화 논쟁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경총은 23일 최저임금 산정기간 수를 ‘소정근로시간’만으로 최저임금법에 명확히 규정해달라는 입장도 밝혔다. ‘일하지 않는 시간’인 주휴시간을 최저임금 산식에서 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재계는 ‘최저임금 제도 개혁 패키지’를 요구하기로 한 셈이다. 최임위 사용자위원은 “주휴시간을 포함해 시급을 환산하면 최저임금이 높아진다”며 “현실과 안 맞아 당연히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 “가장 먼저 잘리는 비정규직 보호해야”...동결·차등화 요구 강력 반발=노동계 안팎에서도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2018년(16.4%)과 2019년(10.9%)의 인상률은 물론이고 5% 인상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또다시 ‘최저임금 제도 개혁’을 들고 나온 재계에 대해 불편함이 감지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규모별 차등화는 근로기준법 적용도 못 받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또 다른 차별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휴시간 산식 제외도 이미 주휴수당이 통상임금이나 다름없이 굳어진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재계의 공세가 심해진다면 올해 최저임금을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만으로 결정하는 ‘반쪽짜리’ 위원회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양대 노총은 올해 최저임금이 2.87%로 결정되자 근로자위원을 총사퇴시킨 바 있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기본급에서 복리후생비와 상여금까지 확대돼 ‘이미 너무 많이 내줬다’는 기류도 있다. 한국노총은 차기 근로자위원 선임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자신들 몫의 근로자위원의 경우 부위원장과 실장급의 섭외를 마쳤고 여성·청년 대표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근로자위원 내정자는 “재계에서 주장하는 최저임금 동결은 말도 안 된다”며 “지난해 비혼단신근로자 생계비가 201만4,955원인데 올해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은 179만5,310원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올해 제도개선 현실적으로 어렵다...인상률 최소화하고 국회에 맡겨야”=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고용위기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폭은 최소화하되 제도개선은 이듬해로 넘겨 불필요한 논란을 낳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곳은 ‘약한 고리’인 중소영세사업자로 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인상폭은 최소화되지 않을까 싶다”며 “다만 제도변경까지 수반하기에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이는 다음 국회에 맡겨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최임위 공익위원 사이에서도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예년과 비슷하겠지만 제도 개선이 얽히면 근로자위원들이 반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임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이 2.87%로 결정된 후 노동계가 사실상 벼르고 있다”며 “인상률의 문제에서 제도개선으로 넘어가면 논의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재현·김민형기자 humbleness@sedaily.com
통계로 드러난 ‘코로나 실업’…2월 근로자 13만7,000명 뚝
전체 종사자수 증가폭도 역대최소
서비스→제조업 전방위 확대 우려
재정악화에 고용보험료 인상 추진
올 2월 국내 1인 이상 사업장 종사자 수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가 폭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도 13만7,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난 2월23일에야 ‘심각’ 단계로 격상된 것을 감안하면 3월 고용지표는 더 악화될 게 확실시된다. 고용보험기금 고갈까지 우려되면서 정부는 고용보험료율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31일 발표한 ‘2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신규 이직자(실직자)는 93만1,000명, 신규 입직자(취업자)는 79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월과 비교하면 1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가 13만7,000명 감소했다. 그만큼 상용직과 임시·일용직이 감소했다는 뜻이다. 2017~2019년 근로자 감소 수치는 7,000~2만1,000명에 불과했다. 2월 전체 사업체 종사자 수도 1,848만8,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16만3,000명(0.9%) 증가하는 데 그치며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작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평년에서 보이지 않던 통계”라며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장 타격이 통계에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직접 악영향을 받은 서비스업종에 이직이 몰렸다. 비자발적 이직의 경우 숙박 및 음식점업이 전년 동기 대비 1만명 늘었고 콜센터·여행업 등을 포함하는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이 9,000명으로 집계됐다.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도 3,000명 늘었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코로나발 고용 타격이 비정규직 중심의 서비스업에서 정규직 중심의 제조업으로 확대되느냐가 문제라고 분석한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앞으로 코로나19가 우리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광범위한 계층에서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구직급여(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날 것이 뻔해 고용보험기금에 대한 재정건전성 우려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은 2조87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임 차관은 “경제위기 때 실업자는 40%까지 증가하며 현재 구직급여 신청자는 15% 증가했다”며 “지난해 보험료율 인상으로 실업급여는 문제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증가하는 구직급여 숫자와 더 걷게 되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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