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콤한 인생’(2005)을 본 사람이라면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에스프레소와 케이크를 즐기는 선우(이병헌 분)가 호출을 받고 지하 룸살롱으로 내려가 깡패들을 내쫓는 도입부를 기억할 것이다. 몽환적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시작돼 강렬하고 화려한 비트로 이어지며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빨아들이는 이 장면의 배경음악은 많은 영화 팬들에게 음악감독 ‘달파란(강기영)’의 이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후로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2008) ‘황해’(2010) ‘도둑들’(2012), ‘암살’(2015) 등 한국 영화계에서 달파란이라는 이름 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가 참여한 ‘곡성’(2016), ‘독전’(2018)은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달파란 음악감독이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킹덤’ 시즌2의 음악을 맡아 처음으로 드라마 음악 작업에 도전했다. 현재는 영화 ‘콜’과 영화 ‘도굴’의 마지막 작업 중인 그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첫 드라마 작업은 영화에서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영화 ’모비딕‘ 작업을 함께 하며 친해진 박인제 감독이 ‘킹덤’ 시즌2의 2~6화의 연출을 맡으면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공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박 감독이 대뜸 ‘킹덤’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는데, 사극과 좀비가 만난 설정이 흥미로워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을 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작업 내내 “매우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었다”며 “좋은 팀워크였고,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킹덤’ 시즌2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장르물과 사극 형태에서 누구나 상상하는 음악적 방식을 탈피하는 것이었다. 그는 “장르물은 음악구성이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사극에는 모두가 떠올리는 음악적 형식이 있는데, 그런 것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킹덤’ 시즌2에는 음악인 듯 음향효과인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깔린다. 달파란 감독은 “주로 현대극이나 SF 판타지 장르에 자주 쓰이는 방법인데, 사극과 버무려보고자 했다. 최대한 이질적이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달파란 감독의 음악 활동의 시작은 밴드였다. 80년대 그룹 ‘시나위’ 베이시스트로 데뷔해 그룹 ‘H2O’, ‘삐삐밴드’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 때만 해도 “영화음악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연찮게 1999년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로 영화음악에 발을 내디딘 그는 지난 20년간 쉼 없이 영화음악을 만들어 왔다.
그는 밴드 활동과 달리 “영화음악 작업은 고독하다”고 토로한다. “밴드 음악은 공동으로 음악구조를 쌓아가면서 내게 없는 새로움을 발견하는 매력이 있다면, 영화음악은 모든 음악적 결정을 혼자 하고, 내 안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혼합해 가니까요.” 그럼에도 영화음악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감을 잡으면서 작업이 매우 재미있어졌고, 힘든 작업이 끝난 후 오는 만족감도 높다”고 밝혔다.
영화음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의 재미를 살려줄 수 있는 ‘무의식적 조미료’와 같다고 말하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장기적으로는 영화음악이 아닌 개인 음악 작업도 좀 해보고 싶어요. 영화 음악에서 미처 해보지 못한 것들도 한 번 시도해보고 싶거든요.”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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